[Why] [이인식의 멋진과학] 물 한 모금의 효과

면접시험을 보기 전에 경미한 복통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직장에서 직급이 낮을수록 상사보다 심장질환과 위장 장애로 시달릴 확률이 더 높다. 일상생활에서 야기되는 지속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질환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만성 질환은 정신신체 질환이라 불린다. 고혈압·위궤양·천식·류머티즘 관절염·신경성 피부염 등이 대표적인 정신신체 질환이다. 스트레스 같은 정신 현상이 신체 건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는 접근방법은 심신의학(mind-body medicine) 또는 정신신체의학(psychosomatics)이라고 한다.

마음이 신체 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상식이 되었지만 거꾸로 몸의 질병이 정신적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23년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정신병 의사인 칼 야스퍼스(1883~1969)는 신체 질환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분야를 신체심리학(somatopsychology)이라고 명명했다.

가장 흔한 정신질환의 하나인 우울증의 경우 유전과 환경 요인이 모두 관련된 복합질병이지만 만성염증도 발병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010년 호주 멜버른대 역학자 쥴리 파스코는 '영국 정신의학저널(British Journal of Psychiatry)'에 실린 논문에서 정신이 건강한 20~84세 여성 644명을 10년간 조사한 결과 편도선 같은 부위의 염증이 오래가면 우울증이 발병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우울증은 호르몬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40대 이후 남성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감소하면서 발기 부전 같은 신체기능 저하뿐 아니라 우울증 같은 정신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량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오메가-3지방산·엽산·비타민·칼슘처럼 아주 적은 분량으로 작용하는 물질을 미량 영양소라 한다. 2011년 미국 캔자스대 신경약리학자 베스 레반트는 우울증 관련 전문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오메가-3지방산이 모자라면 우울증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에 변화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아이를 낳은 직후 산모가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유의 하나도 오메가-3지방산 부족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마음의 능력도 저하시킬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뇌 안에서 물이 부족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물이 충분하지 못하면 뇌세포가 오그라들면서 뇌 조직이 수축되어 정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된다. 젊은이는 기억이나 집중력이 손상되지만 나이 든 사람은 건망증이나 언어 장애가 나타난다. 한편 10살 안팎 어린이의 경우 시험 보기 전에 물을 한 잔만 마셔도 시험 성적이 더 좋게 나온다는 실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한 모금의 물이 뇌가 학습하고 기억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만으로도 신체심리학의 연구에 관심을 갖게 한다.

독일 뤼베크대 의료심리학자 에리히 카스텐은 격월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마인드' 3·4월호에 실린 글에서 "마음의 병을 몸 전체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자칫 놓치기 쉬운 발병 원인도 찾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