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18] "배워야 산다" 높은 교육열로 보통학교 입학난 심각

1937년 3월 23일 경성의 어린이 1만여명과 부모들이 꼭두새벽부터 부산을 떨어야 했다. 공립 보통학교(초등학교) '입시날'이었기 때문이다.

"부형들은 간밤에 혓바닥이 닳도록 일러준 이름과 나이와 생일 등을 또다시 가르치며 열 번이나 백 번이나 선생님이 묻는 말씀에 대답 잘 하라고 부탁한다. 아동들도 초조와 불안한 구름이 가득 끼어 간밤까지 알았던 자기 생일을 깜박 잊어버리고, 어머니에게 가만히 나이 생일이 언제냐고 묻는다…."

3월 24일자 조선일보가 묘사한 시험 당일 풍경이다. 시험이래 봐야 이름과 생일, 주소를 묻고 연필 숫자를 세어보게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전체 수험생 중 입학 가능한 학생은 절반에 불과했으니 부모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떨어지면 다음 입시까지 1년을 기다려야 했다.

1920~1930년대 보통학교 입학난은 심각했다. 일제시대 초기엔 식민통치에 대한 반감으로 조선인 부모들이 아이를 보통학교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919년 3·1운동 이후 인식이 바뀌었다. 체제에 순응해 아이가 남부럽지 않게 살기를 원하든, 혹은 정반대로 독립투사로 키우기 위해서든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이 늘었다.

이 시기가 가혹한 식민 지배로 조선 경제가 몰락한 때임을 감안하면 교육열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조선일보는 "조선의 경제 상태를 돌아보면 이렇듯 높아만 가는 향학열을 감당할는지 위태한 생각도 없지 아니하나 배운 뒤에야 경제도 향상시킬 수 있으며 판단력을 기른 뒤에야 사회의 개선도 꾀할 수 있는 것이니 반가운 현상"(1928년 3월 28일자)이라고 간파했다.

그러나 높아가는 교육열에 비해 학교 증설은 거북이걸음이었다. 조선일보는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해마다 천진한 어린아이들에게 초등학교 입학시험을 보이며, 합격되는 수보다 떨어지는 학동의 수가 10배 내지 수십배에 달하는 등 비참하고 절통한 현상…"(1926년 3월 18일자)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서울조차 매년 절반의 아이들만 입학할 수 있었으니 지방의 사정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나이가 찬 지방 어린이들 중 50~60%가 취학하지 못한다는 식의 기사가 봄이면 연례행사처럼 신문 지면을 덮었다.

그런데도 일제가 예산 등을 이유로 학교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자 보다못한 동포들은 '우리 힘으로 보통학교를 만들자'는 운동을 벌였다. 독지가들의 기부와 학교 설립을 위한 기성회 조직이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강원도 이천군 산내면 주민들의 경우 "면민 7000여명이 일제히 금주 단연(금연)하여 금년 내로 기어이 보통학교를 설립하고자 적극 활동 중인 바 그 성적이 매우 좋다더라"(1932년 5월 23일자)는 눈물겨운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