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인사이드] "더는 못참아" 매맞는 아내, 100억대 자산가 남편 납치해 삽으로…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50대 여성이 조카사위를 시켜 남편을 묶어 데려오게 한 뒤 혼자서 둔기로 내리쳐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도 평택경찰서는 17일 오전 9시쯤 평택시 팽성읍 김모(58)씨의 2층짜리 단독주택 1층에서 김씨와 부인 양모(58)씨가 숨져 있는 것을 아들(35)이 발견해 신고했다고 1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청테이프로 손발이 묶여 있었고 삽과 골프채로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린 채 거실에 누워 있었다.

부인 양씨는 천장 대들보에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됐다. 집안에서는 부인 양씨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A4용지 1장 분량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아들아 미안하다. 이렇게까지 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경찰은 아들이 "어머니가 오랫동안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고, 수시로 '너희 아빠를 죽이겠다'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씨 집 출입구 쪽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에서 양씨의 조카사위인 장모(32)씨가 동네 선후배 3명과 함께 김씨 양팔을 잡고 집으로 끌고 들어가는 장면을 확보했다. CCTV에는 부인 양씨가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삽, 목을 매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끈 등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검거된 조카사위 장씨 등 4명은 김씨를 납치해 감금한 혐의는 인정했지만, 김씨를 살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가정폭력에 따른 살인사건일 가능성이 크지만, 숨진 김씨가 최소 100억원대 이상의 자산가라고 이웃들이 진술하고 있어 재산을 노린 범행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추가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가정폭력이 살인 사건으로 이어진 극단적 경우다. 우리 사회에 가정폭력 문제를 '프라이버시'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 외부로 노출되는 경우가 드물지만, 실태는 예상외로 심각하다.

여성가족부가 65세 미만 부부(3800쌍)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2010년 전국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부부간 신체적 폭력이 발생한 비율은 16.7%에 달했다. 2007년 조사 때(11.6%)보다 5.1%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가정 폭력이 살인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작년 8월 경남 창원에선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폭행당한 이모(40)씨가 남편 머리에 비닐봉지를 뒤집어 씌워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 내 유기하는 엽기적 사건이 발생했다. 작년 10월에도 20세에 결혼한 후 50년 넘게 남편(83)의 폭력에 시달린 유모(76) 할머니가 남편 머리를 각목으로 내리쳐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건만을 분석한 결과 작년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된 여성의 수가 74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활동가 김홍미리씨는 "부부 사이 폭력은 은밀하게 진행돼 '저 사람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의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부부간 폭력을 모두 이혼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가해자에 대해 강제 심리치료를 받도록 하는 등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