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제주를 푸르다 했나… 제주는 노랗다

비바람이 몰아쳤다. 황색 바다와 황색 하늘이 요동쳤다. 해송(海松)의 가지가 휘어졌다. 바람에 놀란 말이 고개를 들고 울부짖었다. 등 구부정한 사내가 지팡이를 짚고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1975년부터 제주에 머물며 황색 제주를 그려온 변시지(85) 화백의 '폭풍'(2000) 속 풍경이다. 그러나 그림의 황색은 사실 햇살의 황금빛이다.

"1975년 제주 공항에 내렸을 때,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었어요. 강한 햇빛 아래 모든 풍경이 누렇게 보였어요. '아, 제주는 누런색이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내달 16일까지 서울 소격동 빛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 변 화백은 "처음엔 푸른 바다를 주로 그렸지만 그려놓고 보면 내가 느낀 제주가 아니었다. 고민 끝에 그전까지의 모든 기법과 색을 버리고 '누런 제주'를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유화 23점, 판화 2점 등 모두 25점이 나왔다.

황토빛 배경에 검은 선으로 그려진 초가집 한 채, 말 한 마리, 소나무 한 그루…. 변시지 화백의 제주 풍경 속 사물은 대개 혼자다.

그는 "그림 속 사물들이 짝이 없어야 그림이 보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짝을 채워넣어버리면 그림 속에서 이야기가 끝나버린다"고 했다.

요즘 변 화백은 거의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예전엔 항상 팔레트가 젖어 있었는데, 여든이 넘으면서 집중력이 떨어졌어요." 지팡이를 짚고 전시장을 둘러보는 그의 뒷모습이 그림 속 지팡이 짚은 사내와 겹쳐 보였다. (02) 720-2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