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씨네 칵테일] '무산일기'의 기교 없는 기교
입력 : 2011.04.19 10:34 | 수정 : 2011.04.20 17:36
화제작은 별로 없고 고만고만한 영화들이 대부분인 영화 비수기(非需期) 4월 극장가에서 ‘눈 비비고 들여다볼 만한’ 한국 영화 한 편을 만났습니다. 14일 개봉된 탈북자 소재 영화 ‘무산일기' (박정범 감독)입니다.
단 한 사람의 유명배우도 나오지 않는 ’독립영화‘여서 보다가 졸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127분)동안 잠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숨이 붙어있는 모든 사람이라면 가장 절박한 테마인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우리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가‘를 풀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 한 사람의 유명배우도 나오지 않는 ’독립영화‘여서 보다가 졸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127분)동안 잠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숨이 붙어있는 모든 사람이라면 가장 절박한 테마인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우리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가‘를 풀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탈북자들이 ‘따뜻한 남쪽나라’의 품에 안겨 그런대로 잘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뒤흔듭니다. 탈북청년 ’전승철‘은 목숨 걸고 경계를 넘어왔지만, ’자유의 땅‘에서 뿌리 내리기 위해서 또다시 목숨 걸고 몸부림칩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의 삶은 하루하루 더 외롭고 더 고통스러워질 뿐입니다. 친구도 없고 ’빽‘도 없고, 심지어 주변머리조차 없는 청년이 이 땅에서 제대로 된 일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탈북자‘ 꼬리표 때문에 직업 구하려다 퇴짜맞기 일쑤입니다. 결국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길 가에 불법 벽보를 붙이는 위험한 일을 하지만 “똑바로 못 하느냐”는 고용주의 욕설, “우리 구역에 붙이지 말라”는 깡패들 구타로 몸과 마음에 상처만 늘어갑니다.
어떤 사람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승철의 유일한 즐거움은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 숙영이라는 여성을 먼 발치서 보는 것입니다. 승철은 숙영네 노래방의 아르바이트생이 되어 그녀와 가까운 거리에 들어가지만, “앞으론 교회에서 나를 아는 척하지 말아 달라”는 그녀의 말이 승철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그의 마음 속 모든 것들, 짝사랑도, 우정도 열매맺지 못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승철의 탈북자 동료인 경철이 몰래 하던 대북 송금 브로커 일이 잘못돼 위험한 상황에 놓이자 승철 역시 위기에 빠집니다. 승철의 처지는 그가 길에서 주워 유일한 친구로 삼은 백구(白狗)의 신세에 가까와집니다.
무거울 듯한 영화인데도 빨려드는 건 황폐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순수한 영혼의 안쓰러운 추락이라는, 외면하기 힘든 드라마가 소름 끼치는 사실감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애정을 풀어가는 이 영화의 스타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무(無)기교‘의 진솔한 화법입니다. 의도적인 쇼트 분할도 없이 고정촬영하는 카메라는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주인공이 부딪치는 비참한 상황들을 냉정하게 지켜봅니다. 관객의 감정을 유도하는 음악도 전혀 삽입되지 않았습니다. 문장에 비유한다면, ’무산일기‘는 군더더기 수식어를 모두 발라내고 싸늘하게 하게 적어간, 하드보일드(hard-boiled)한 문장입니다.
무기교의 특징을 더 도드라지게 느끼게하는 것은 출연진들의 사실적인 연기입니다. 시종 거의 표정 변화가 없이 서울에 온 북한청년 처럼 보이는 ’전승철‘을 비롯해 그를 돌보는 박형사 등 배우들은 진짜 탈북자나 경찰관인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연기를 ’매끄럽게‘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여서입니다. 화술에서 시선·표정까지, 기존의 영화·드라마에서 흔히 만나던 판에 박힌 연기와 전혀 다른 이 배우들의 진짜 연기는 우리 주변의 누구를 보는 듯한 현실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 단발머리 탈북청년 전승철 역을 연기한 ‘배우’가 박정범 감독 자신이란 사실에 한번 놀라고, 박형사를 연기한 사람이 박감독의 부친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탈북자라는 정치적, 사회적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섣부른 연민으로 그들을 동정하거나 ‘분단의 비극이 낳은 최대의 피해자’라는 식으로 거창하게 꾸미지도 않고 있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냥 그들을 황폐한 땅에 무방비로 내동댕이쳐진 비참한 존재라는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무산일기’는 ‘탈북자 소재 영화’라는 말 만으론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거짓말 같은 것 할 줄 모르는 순수한 영혼에게, 제대로 살아갈 여지를 주지 않는 이 사회는 도대체 어떤 사회인가를 드러냅니다. 마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서울을 찾아온 연변처녀의 눈을 통해 한국사회의 그늘을 들춰낸 것처럼 ‘무산일기’는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의 황폐하고 비정한 얼굴을 선명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승철이 어느 공장에 취직을 부탁하러 갔다가 조금이라도 ‘점수를 따려고' 공장사장이 마신 커피잔을 조용히 설거지하는 장면처럼. 감독이 세상사를 사려깊게 관찰해 왔음을 느끼게 하는 몇 대목들이 여운을 강하게 남깁니다.
’있는 그대로의‘ 영화를 맛보고 싶어 이 작품 관련 정보들을 되도록 읽지 않고 봤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 제 40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대상, 제 13회 도빌아시안영화제 심사위원상 등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영화제 수상작이지만 심오하고 난해한 예술영화와 차별되는,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물론 심심풀이 오락용 재미와는 다른 재미입니다.
무거울 듯한 영화인데도 빨려드는 건 황폐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순수한 영혼의 안쓰러운 추락이라는, 외면하기 힘든 드라마가 소름 끼치는 사실감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애정을 풀어가는 이 영화의 스타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무(無)기교‘의 진솔한 화법입니다. 의도적인 쇼트 분할도 없이 고정촬영하는 카메라는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주인공이 부딪치는 비참한 상황들을 냉정하게 지켜봅니다. 관객의 감정을 유도하는 음악도 전혀 삽입되지 않았습니다. 문장에 비유한다면, ’무산일기‘는 군더더기 수식어를 모두 발라내고 싸늘하게 하게 적어간, 하드보일드(hard-boiled)한 문장입니다.
무기교의 특징을 더 도드라지게 느끼게하는 것은 출연진들의 사실적인 연기입니다. 시종 거의 표정 변화가 없이 서울에 온 북한청년 처럼 보이는 ’전승철‘을 비롯해 그를 돌보는 박형사 등 배우들은 진짜 탈북자나 경찰관인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연기를 ’매끄럽게‘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여서입니다. 화술에서 시선·표정까지, 기존의 영화·드라마에서 흔히 만나던 판에 박힌 연기와 전혀 다른 이 배우들의 진짜 연기는 우리 주변의 누구를 보는 듯한 현실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 단발머리 탈북청년 전승철 역을 연기한 ‘배우’가 박정범 감독 자신이란 사실에 한번 놀라고, 박형사를 연기한 사람이 박감독의 부친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탈북자라는 정치적, 사회적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섣부른 연민으로 그들을 동정하거나 ‘분단의 비극이 낳은 최대의 피해자’라는 식으로 거창하게 꾸미지도 않고 있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냥 그들을 황폐한 땅에 무방비로 내동댕이쳐진 비참한 존재라는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무산일기’는 ‘탈북자 소재 영화’라는 말 만으론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거짓말 같은 것 할 줄 모르는 순수한 영혼에게, 제대로 살아갈 여지를 주지 않는 이 사회는 도대체 어떤 사회인가를 드러냅니다. 마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서울을 찾아온 연변처녀의 눈을 통해 한국사회의 그늘을 들춰낸 것처럼 ‘무산일기’는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의 황폐하고 비정한 얼굴을 선명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승철이 어느 공장에 취직을 부탁하러 갔다가 조금이라도 ‘점수를 따려고' 공장사장이 마신 커피잔을 조용히 설거지하는 장면처럼. 감독이 세상사를 사려깊게 관찰해 왔음을 느끼게 하는 몇 대목들이 여운을 강하게 남깁니다.
’있는 그대로의‘ 영화를 맛보고 싶어 이 작품 관련 정보들을 되도록 읽지 않고 봤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 제 40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대상, 제 13회 도빌아시안영화제 심사위원상 등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영화제 수상작이지만 심오하고 난해한 예술영화와 차별되는,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물론 심심풀이 오락용 재미와는 다른 재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