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눈 공간서 재능 나누길"

"당신 농담이지? 월세가 얼만데…." 아내가 말렸다.

"아버지, 우리 회사에서도 '사회공헌' 말은 많이 하는데 실천하긴 어려워요." 아들도 가세했다.

이광만(59) 간삼건축 회장이 지난해 집의 일부를 젊은 예술가들에게 내주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 반응이었다. 그는 포스코센터·영풍빌딩·제주도립미술관·동숭아트센터 등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다. 그는 실제로 올봄 자신이 사는 2층짜리 주택의 1층과 지하층 231㎡를 '이루(李樓)'라는 이름의 갤러리로 만들어 작가들에게 무료 개방했다. 세를 놓으면 월 400만원은 너끈히 받는 공간이다.

한국건축가협회 수석부회장인 그는 "환갑이 다 돼가는데 건축가로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공간 나눔'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평생 다른 사람의 집을 지어주면서 막상 내 집은 제대로 가꾸지 못하고 있다는 회의가 들었어요. 지역사회의 소통을 건축적으로 실험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이 회장의 집은 서울 삼성동 경기고등학교 바로 옆에 있다. 연예인들이 사는 고급 빌라가 밀집한 매우 폐쇄적인 동네다. 그는 "문을 꽁꽁 닫고 사는 차가운 분위기를 바꾸려고 길에서 1층 갤러리 안이 훤히 보이도록 담장을 허물고 큰 통유리를 썼다"고 했다. 대학 때까지 한옥에 살며 개방된 공간에서 이웃과 무람없이 지내던 추억을 되살렸다.

사회공헌이라는 취지에 맞게 갤러리에선 유명 갤러리 문턱을 넘기 힘든 신진 혹은 무명작가 작품을 무료로 전시한다. 첫 전시자는 배고픈 예술가의 길을 걷다 미술학원을 연 동네 아저씨였다. 지나가던 미대 대학원생이 패브릭 전시를 문의해 와 공짜로 열어준 적도 있다. 현재는 신진 작가 노석미·박진우·정용진·김광우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 회장은 "갤러리가 장기적으로는 창의적인 일을 했던 퇴직자들이 모여 젊은 예술가를 위해 재능을 나누는 사랑방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