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51주년] "이젠 화해해야 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이젠 화해해야 한다"]

"이승만과 4·19 모두 건국자산… 큰 역사는 화해로 가고 있다"
4·19 당시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장 이세기씨

4·19혁명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1960년 4월 18일 고려대생 시위를 이끌었던 이세기(李世基·75) 한중친선협회장은 19일 중국 하얼빈에서 전화를 받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 박사가 4·19 민주묘지를 방문해 4·19 희생자 및 유족들에게 사과하려 했으나 유족단체들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같은 4·19 관련자라 하더라도 우리처럼 살아남은 자와 희생자의 유족들은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시간을 갖고 진심으로 그분들의 마음을 산다면 언젠가는 이승만과 4·19 유족의 화해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큰 역사는 이승만과 4·19의 화해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세기 회장은 4·19 당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으로 정경대 학생회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에는 총학생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 회장은 상대 학생회장이던 이기택(李基澤·74) 민주평통 상임부의장과 함께 학생 데모를 이끌었다. 이 회장은 4·18 고대 시위 당시 시국선언문을 낭독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낭독을 끝내고 정문을 뚫고 나가 여러 겹의 경찰 저지선을 뚫고 당시 서울 태평로에 있던 국회 앞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리고 우리의 주장을 밝힌 다음 학교로 돌아오는데 광장시장 부근에서 정치깡패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수십명이 쓰러지는 것을 봤습니다. 다음날 신문에 '고대생 1명 사망'이라는 기사도 실렸지요. 물론 오보였습니다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시민들을 흥분시켰습니다."

이 회장은 4·19 희생자 유족들이 강한 반발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조금 색다른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4·19 이후 사회가 혼란했지요. 학생들의 역량도 분산돼 4·19의 본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요. 그러다가 5·16이 있었고 이후 오랫동안 4·19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87년 민주화 이후 겨우 4·19에 대한 조명이 이뤄지고 명예도 회복되는 중이었는데 최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해지면서 다시 4·19가 폄하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반발이 거세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제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과 건국 그리고 4·19의 민주화 혁명은 대한민국의 정신을 형성하는 대등한 자산으로 볼 때가 됐습니다.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지요."

이 회장 자신은 이승만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었다. "이곳 중국 사람들로부터 지혜를 빌릴 필요가 있어요. 중국인들은 역사를 일진일퇴(一進一退)하면서 계승하는 것으로 봅니다. 중국의 이승만에 해당하는 건국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이 죽었을 때 격하운동이 벌어질 조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덩샤오핑(鄧小平)이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했어요. 공칠과삼(功七過三). 그리고 '마오쩌둥의 과오 속에는 내 과오도 포함된다. 과오는 내가 고쳐 나가면 된다'고 선언했습니다. 지금 중국의 눈부신 발전은 덩샤오핑의 이 한마디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얼마 후면 5·16이 있은 지 50주년이다. 또다시 역사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모두 자신이 했다는 식의 창업주 의식을 버릴 때가 됐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힘겹게 벽돌을 하나씩 쌓으며 지금까지 왔잖아요. 거기서 화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4·19 이후 고려대와 일본 도쿄대에서 학위를 받고 고려대 정경대 교수로 재직하다 정치에 뛰어든 이 회장은 4선의원과 국토통일원·체육부 장관을 지냈고 지금은 한중친선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독재는 독재이고 악일 뿐… 功 있다고 善이 될 순 없다"
서울대 4·19 학생 시위 주도한 유세희씨

"이승만 전 대통령이 혼자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 것입니다. 이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추앙하려고 하면 4·19 정신은 폄하될 수밖에 없어요."

유세희(柳世熙·71) 한양대 명예교수는 19일 "이 대통령에게 공(功)이 있지만 그 과(過)가 참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과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라며 "독재는 독재이고 악(惡)일 뿐이지 공이 있다고 해서 선(善)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1960년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3학년이던 당시 같은 과 이수정(李秀正), 철학과 서정복(徐正福) 등과 함께 4·19선언문과 격문을 쓰는 데 참여하고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지난해 4·19주도세력의 모임인 '4월회' 회장을 맡아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 '4월민주혁명 50주년기념탑'을 세우기도 했다.

유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李仁秀·80)씨의 '사죄성명'에 대해 "아버지가 잘못한 것을 아들이 사과한다고 사과가 되는 것은 아니다"며 "더군다나 미리 성명을 배포하고 '언론 플레이'를 하는 방식으로 사죄한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유 교수는 '4·19 정신'이 그동안 좌·우 양쪽에서 폄하되어 왔다고 했다. 그는 "일부 좌파는 4·19에 대해 군부독재를 유발한 촉매제였다고 비판하고, 일부 우파는 철없는 학생들이 들고일어나 건국의 아버지 이미지를 훼손했다고 비난해 왔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4·19는 5·18과 6·10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뿌리이며 4·19 때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생긴 '하면 된다'는 각성의 정신이 산업화를 일궈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높이려는 시도는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만약 이 전 대통령이 임기를 두 번만 하고 물러났더라면 단정수립 과정에서 중간파를 배제하고 반대파를 탄압하는 등의 잘못이 있더라도 그를 용납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3·15부정선거를 통해 네번째 대통령이 되어 영구집권을 시도한 인물"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 사실을 몰랐고 발포명령도 그와는 무관하게 아래에서 자의적으로 행해진 것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대통령이 몰랐다면 그것도 잘못이고 알고도 내버려둔 것이라면 더욱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는 "3·15선거 당시 마산 등에서 이미 10여명의 사상자가 생겼는데 대통령이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4·19가 일어난 뒤에도 이 대통령은 이기붕의 부통령 사퇴 정도로 무마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된다면 자유당 정권 아래에서 피해를 입고 4·19 때 희생당한 사람들의 설 땅은 어디 있는가"라며 "아직 많은 희생자 유족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이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이승만을 부정하면 심지어 '좌파'라고 비난하는데 이는 과거 '관제 빨갱이 만들기'와 다르지 않은 것"이라며 "이 전 대통령밖에 건국의 공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게 오히려 공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4·19 세력도 국민 통합을 바란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일방적으로 사과한다고 해서 통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가 아물고 관용이 일어나야 가능한 일"이라며 "수유리 묘지에 처박힌 '슬픈 이미지'의 4·19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 분수령으로서 4·19가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