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19] 90년 전 '무선전화'… 촌사람에게 소리 들려주고 돈 챙겨

'관부(關釜)간 무선전화'(1920년 6월 28일자), '자동차에 무선전화통 설치'(1921년 7월 4일자) '급행열차에 무선전화 설치'(1921년 9월 5일자), '관부간 무선전화 시험에 대하여'(1921년 7월 4일자)…. 조선일보 창간 초창기인 1920년대 지면에 실린 기사들이다. 90년 전에 웬 무선전화? 이는 라디오의 등장을 알리는 기사다.

당시 사람들은 새로 등장한 전화가 선(線)을 통해 소리를 전달한다는 사실은 근근이 이해했지만, 전파에 소리를 실어 전달하는 현상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선도 없는데 소리를 전해주는 기계인 라디오를 '무선전화'라 부른 것은 자연스러웠다.

1895년 이탈리아의 마르코니가 무선통신 교신에 성공한 이래 1920년 11월 미국에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이 생기면서, 전 세계는 라디오 실험 열풍에 휩싸였다. 조선일보에도 '미국에서 연주한 것이 무선전화로 일본에 들려, 참으로 희한한 일'(1923년 12월 13일자), '편리한 무선전화'(1924년 10월 6일자) 같은 시험 방송과 라디오에 대한 해설 기사가 쏟아졌다. 이들 기사들에 따르면 무선전화는, "기계 하나만 설비하여 두면 음악, 연설, 강연, 무엇이든지 집에 가만히 앉아서 들을 수 있는 신기막측한 것"으로, "근대 과학 문명의 소산 가운데 가장 걸작"이었다.

조선에서도 1924년 12월 11일, 일본 전보통신 경성지국이 최초로 무선전화 시험 방송을 실시했다. 이날자 조선일보는 '공중에 우는 무성악(無聲樂)'이란 제목 아래, "구리줄조차도 연락되는 것 없이 귀에 들리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말소리와 음악 소리가 허공으로부터 들어와, 몇 천리 몇 만리 격한 사람에게 들린다는 것은 참 생각도 못할 일"이라며, "이 긔괴한 사실이 구미각국에서는 우리가 보통 전화를 이용하는 이상으로 이용하고 있는 터"라고 전했다. 그 엿새 뒤 조선일보도 우리나라 최초로 우리말로 하는 무선전화 시험 방송을 실시, 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利器)를 널리 알렸다.

당시 라디오 청취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불법으로 라디오를 들고 다니면서, 촌민에게 소리를 들려주고 돈을 받아 챙기는 '불법'도 흔했다.(1926년 5월 7일자) 또 경성역(1925년 12월 12일자)과 조선호텔(1926년 5월 11일자) 등 당시 최고급 식당에선 라디오를 설치, 일본 동경과 오사카·나고야와 중국 상해에서 송출한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도록 서비스했다. 이어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이 전파를 발사, 이 땅에서 최초로 정규방송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라디오 시대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