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암모나이트 화석·해치상… 수집에 꽂힌 CEO들

중생대의 표준화석인 암모나이트(ammonite). 자연스럽게 각종 유물이 전시된 자연사박물관이나 약품냄새 가득한 과학실험실이 떠오른다. 하지만 서울 한남동 '갤러리 지오'에서 화석은 고생물학 전시물 이라기보단 수억 년 세월에 걸쳐 지구가 빚어낸 예술작품이다. 형형의 암모나이트 화석들, 1억7000만년 전 살았던 '바다의 백합' 크리노이드(Crinoid) 화석, 5000만년 전 수중 생태계의 폭군 애미아(Amia) 화석에서 관람객은 시선을 떼지 못한다.

이곳 갤러리는 고생물학자가 아닌 전시시설 시공업체 '미래세움' 최석중(52) 대표가 직접 구상하고 만들었다. 1999년 미국에 출장을 갔던 최 대표는 우연히 암모나이트 화석을 접하고 암모나이트 나선형 곡선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최 대표는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고 이후 회사를 운영하느라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생물학자의 꿈을 화석을 통해 되살려냈다"고 했다. 이후 최 대표는 독일·러시아·미국·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화석을 수집했다. 지금까지 암모나이트 화석 800여점, 멸종 어종 화석 50여점, 공룡 화석 10여점을 모았다. 그는 "지질연대별로 화석을 수집해 생물 진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갤러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최근 이처럼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기업 CEO 애호가들이 자신이 10~20년씩 모은 수집품을 일반에 공개하는 전시가 줄을 잇고 있다. 애호가들은 전문가와 달리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게 전시를 한다. 그래서 최 대표의 전시물에는 화석의 고생물학적 가치에 대한 설명 대신 화석의 아름다움 자체를 강조한 배치와 장식이 눈에 띈다.

문구 유통업을 하는 한중앙물산 이인한(55) 대표는 20년째 해치(����) 석상을 모으고 있다. 이 대표 역시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다. 경복궁 옆 효자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중국 출장 중 우연히 마주친 해치상에서 어린 시절 경복궁 앞의 해치상에서 느꼈던 '돌 향기'를 맡았다. 해치상에 '꽂힌' 이 대표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일본·베트남·캄보디아 등 아시아 전역에서 해치상을 모았다. 지금까지 그가 모은 해치상은 모두 1000여점. 이 대표는 자신이 수집한 해치상을 전시할 해치박물관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반평생 모은 석상을 보다 문뜩 나 혼자 즐기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보다 많은 사람이 '돌 향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전시를 통해 사회 환원을 실천하는 CEO 애호가들도 있다. GS안과 김무연(42) 대표 원장은 서울 역삼동과 방배동 자신의 병원에 자신이 수집한 그림과 신진 작가들의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김 원장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림을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고 했다.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김정운 교수는 "애호가들은 수집한 물건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욕망이 있다"며 "애호가들이 증가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다양해지고 교양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애호가들이 전문가들의 영역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 지식인과 일반인의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경제력이 있는 CEO가 아니더라도 분야별 애호가들이 자신의 수집품을 모아 전시하는 갤러리와 박물관이 서울에만 100여곳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