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영웅의 훈장, 60년 만에 고국 품에 안기다

'15일 0시 인천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

1950년 9월 14일, 연정(延禎·2002년 사망·사진) 해군 소령에게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이 하달됐다.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간 북한군에 밀려 국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때였다. 연정은 한국인 특수요원과 미군 장교 등 동료 5명과 함께 '팔미도 작전'에 투입됐다. 목숨을 건 특공대는 이날 밤 팔미도에 접근, 인민군 2개 분대를 급습했다. 특공대가 장악한 팔미도 등대에 불이 켜졌다. 인천 앞바다의 연합군 함대에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라는 신호였다.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무공훈장인 '은성(銀星)훈장'을 3개나 받은 연정의 첫 공훈이었다.

"미국에 놔두면 고철밖에 더 되겠습니까. 연정 같은 전쟁 영웅의 유품을 한국에 가져와 후손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22일 오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배익(87)씨는 친구의 빛바랜 훈장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9년 전 세상을 떠난 '인천상륙작전의 코리안 영웅' 연정이 1951~1953년 받은 은성훈장 3개와 각각의 증명서가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연정은 6·25 전쟁 당시 한국인들로 구성된 미국 육군 8240부대(KLO·Korean Liaison Office·미 극동군사령부 주한연락처) 유격대장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끄는 등 영웅적으로 활약했다. 우리 정부도 그에게 충무·을지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그의 은성훈장이 22일 한국으로 왔다. 그가 숨진 지 9년, 6·25 전쟁 발발 61년 만이다.

경기중학교 동기생인 배씨가 2년 전 연정의 미망인 김영옥(82·미국 LA 거주)씨에게 "남편 훈장들을 모국에 기증하자"고 제안, 경기중학교 후배인 김병묵(83·미국 거주)씨가 이날 훈장을 갖고 귀국했다. 김씨는 "조만간 전쟁기념관에 연정의 훈장을 기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학교와 일본 주오(中央)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연정은 6·25전쟁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영웅이지만, 그의 활동이나 행적은 크게 알려지지 않고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다.

배씨에 따르면, 연정은 6·25 전쟁이 끝난 뒤 일본에서 미군의 정보요원으로 활동했고, 1970년대 은퇴 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고 한다. 연정의 첫 무공은 6·25 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은 인천상륙작전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었던 '팔미도 등대 작전'이다. 한 달 뒤인 1950년 10월 중공군의 참전 준비 첩보를 입수, 두 번째 무공을 세웠다. 1951년 3월 원산에 침투해 흑사병 창궐 여부를 확인한 것도 그다. 3개의 은성훈장은 이렇게 받았다. 미국 정부는 그를 영웅이라고 했지만, 한국에서는 그를 잊고 있었다. 미망인 김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진작에 (훈장들을) 보냈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것 같아 미안하다. 부디 한국의 전쟁기념관에서 잘 보관해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