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오가 노리오 前 소니 회장… 하드·소프트웨어 함께 쥐고 '소니 신화' 이끌어

일본 가전업체 소니를 세계적 기업으로 일군 오가 노리오(大賀典雄·81) 전 소니 회장이 23일 오전 9시 14분 도쿄에서 별세했다.

오가 전 회장은 도쿄예술대 성악과에 다니던 1953년 소니 전신인 도쿄통신공업의 녹음기 음질에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 것을 계기로 이 회사 공동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井深大·1908~1992) 및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1921~1999)와 인연을 맺었다. 베를린 국립예술대를 졸업한 1959년 두 창업자의 끈질긴 '구애' 끝에 음악활동 병행을 조건으로 입사했다. 입사 첫해 부장, 1976년 부사장, 1982년 사장, 1995년 회장, 2003년 명예회장, 2006년 상담역(고문)에 취임했다.

그는 1970~80년대 미국 CBS 레코드 부문(현 소니 뮤직엔터테인먼트)과 컬럼비아 영화사(현 소니 픽처스엔터테인먼트)를 사들여 소니를 음악·영화에서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통합시킨 글로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89년의 컬럼비아 인수는 세계 언론이 "미국의 혼(魂)이 일본에 팔렸다"고 했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인수 금액은 34억달러로, 일본이 해외기업 인수에 들인 역대 최고액이었다.

오가 전 회장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자동차의 두 바퀴"라고 말하곤 했다. 기기를 팔려면 콘텐츠가 팔리게 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었다. 그는 1980~90년대 음악·영화 등을 담는 콤팩트디스크(CD)와 미니디스크(MD) 개발을 지휘하며 '소니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실패도 있었다. 가정용 비디오레코더 규격에서 고밀도 녹화방식으로 소형인 '베타 방식'을 추진했지만 VHS 방식에 밀려 소니의 영상사업이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고화질TV '하이비전'을 출시해 열세를 만회하고,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게임사업에 진출해 하드·소프트웨어를 결합한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개발하며 업계를 선도했다.

두 공동 창업자가 각각 '기술의 이부카' '마케팅의 모리타'라고 불릴 때 그는 '디자인의 오가'라는 별칭을 얻은 소니의 '삼두마차'였다. 1962년 'SONY' 로고를 만들어 국제적 브랜드로 키웠고, 사장 퇴임 후에도 디자인 부문을 총괄했다. 그는 "우수한 성능, 시각적 아름다움, 그리고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마음의 현(絃)을 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음악가로도 자취를 남겼다. 1973년 바리톤으로 도쿄교향악단과 공연했고 1990년 도쿄 필하모니교향악단과 베를린 필하모니교향악단을 지휘하기도 했다. 1999년 도쿄필 회장·이사장에 취임한 그는 세계적 지휘자 카라얀과도 깊이 친교를 나눴다. 내달 4일에는 일본 대지진 이재민을 위한 도쿄필 공연을 지휘할 예정이었다.

사장·회장 시절 매일 밤 10시부터 몇 시간만 자고 일어나 비행기 조종 공부를 해 자격증을 딴 뒤 소니 소유 출장용 비행기를 직접 조종한 일화도 유명하다. 2003년 은퇴할 때 받은 퇴직위로금 16억엔(210억원)을 나가노(長野)현 음악홀 건립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