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곳이 자살률 높다는데…

최근 KAIST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남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진 것 같은 사람들의 자살을 일반인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과학적인 연구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살기 좋다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자살률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살기 좋다는 곳에서 오히려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풍요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일까.

영국 워윅대와 미국 해밀턴대, 연방준비은행의 경제학자들은 지난 21일 '경제 행동과 조직 저널'에 미국 51개주(州)의 삶의 만족도와 자살률을 비교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미국 전역에서 무작위로 230만명을 추출해 삶의 만족도를 묻는 한편, 각 주의 자살률을 분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삶의 만족도가 높은 주일수록 자살률도 높았다. 하와이주는 삶의 만족도에서 미국 2위였는데 자살률도 5위로 매우 높았다. 반대로 뉴저지주는 삶의 만족도가 바닥에 가까운 47위였지만 자살률도 47위로 낮았다.

연구진은 사회적 관계에서 해답을 찾았다. 워윅대 앤드루 오스왈드(Oswald) 교수는 "살기 좋은 곳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된 사람은 삶이 더 가혹하다고 느낄 것이고, 이처럼 극단적인 대조가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살기 힘들다는 사람이 많은 환경에서는 그런 대조가 덜해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이른바 '이스터린 패러독스'도 비슷한 설명을 한다. 미 사우스캘리포니아대의 리처드 이스터린(Easterlin) 교수는 1974년 "전 세계 30개국을 조사한 결과 경제적 발전단계와 사회체제와 상관없이 일정 시점을 지나면 소득수준이 더 높아져도 행복도가 그만큼 높아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이스터린 교수가 지난해 12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채 20년도 되지 않아 1인당 소득이 두 배로 증가했지만 행복도는 1980년대까지 조금 높아지다가 1990~2005년 사이엔 오히려 떨어졌다.

이스터린 교수의 분석은 우리나라 자살률 변화와 일치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80년대에서 1994년까지만 해도 자살률이 10만명당 10명 이하인 저(低)자살률 국가였다. 하지만 1995년부터 자살률이 계속 증가해 2009년 31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특히 IMF 경제위기가 극복된 후에도 자살률이 계속 증가한 것은 행복이 경제적 요인으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