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된 판결문·수형기록 요구… 독립유공자 인정받기 너무 힘들어"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최인섭(57) 선임연구원은 8년째 아버지 최병항(1905~1966)씨의 독립운동 기록을 찾아 헤매고 있다. 2003년 작은아버지로부터 아버지가 청년 때 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제2차 간도공산당사건'에 연루돼 1928년부터 1931년까지 4년간 서대문형무소에 복역했다는 사실을 들은 뒤부터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같은 관련 기관과 서대문형무소 등 아버지의 관련 기록이 있을 만한 곳은 이 잡듯 뒤졌다.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판사가 작성한 피고인 심문 조서, 간도공산당사건 사건기록 등 많은 자료를 확보했다. 그는 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보훈처는 '출옥 이후 사망까지 행적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기각했다. 그는 지난 2월 보훈처에 세 번째 신청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최씨는 "자료가 부족하면 정부 내 전문가들이 나서서 찾아줘야 할 것 아니냐. 수십 년이 지나 없어졌을지도 모르는 자료를 일반인이 어떻게 찾느냐"며 "보훈처 안에 독립유공자 신청 전문 창구도 없어 물어물어 찾아간 후손들은 자료가 없어 안 된다는 답변을 듣고 절망하게 된다"고 말했다.

13년간 증조부의 독립운동 자료를 찾다가 실패했다는 손정호(47·대학 강사)씨는 "독립운동 자금을 대거나 비밀 결사 활동을 한 선조가 신분을 드러내놓고 하진 않았을 텐데 어떻게 공식 자료로 입증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300만명이 넘고, 희생자는 15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사람은 올 3월 현재 1만2443명이다. 그중 정부가 1995년 이후 사료를 발굴해 유공자로 인정한 사람은 34.7%인 4319명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1995년 이후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은 4594건이고 그중 받아들여진 경우는 34.9%인 1602건"이라고 말했다. 독립기념관 산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을 지낸 한시준(57)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30년간 활동한 독립운동가 중 1만2000여명만 독립유공자로 인정한 것은 너무 적다는 지적이 학계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을 한 많은 선조들이 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인정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활동내역이나 피해사례, 수형 사실을 증명할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하거나 옥고(獄苦)를 치렀어도 3개월 미만인 경우는 인정되지 않는다. 독립운동 기간은 6개월 이상이어야 하고, 해방 이후 활동이 확실치 않은 경우도 제외된다.

판결문이나 수형 기록이 있으면 쉽지만 일제 때 원(原)자료만 인정되고 포상이 시작된 1962년 이후에 나온 2차 자료는 인정되지 않는다. 일제 판결문이나 수형 기록은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며 소실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구전(口傳)으로 선조의 독립운동 사실을 알거나 사진 같은 방증 자료를 갖고 있는 후손들은 객관적인 자료를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보훈처 공훈심사위원인 장석흥(55)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는 "국가나 기관들이 더 적극적으로 자료 발굴 노력을 해야 한다"며 "일본,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자료가 계속 나오고 북한에도 기록이 남아 있을 수 있으니 정부와 학계가 의지를 갖고 자료 발굴과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을동 의원도 "정부가 유공자와 후손의 증언을 바탕으로 관련 입증자료를 갖추는 데 실질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