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21] 잦은 고장·사고로 원성… “전차가 살인” 제목달아 비판

1929년 4월 22일 서울 진명여고보 학생 112명을 태운 전차가 시내에서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전교생 380여 명이 청량리로 원족(遠足·소풍)을 가기 위해 전차 3대를 대절해 나눠 탔는데 그중 한 대가 적선동 서십자각 앞 커브길에서 뒤집어진 것이다. 70여 명이 다쳤고 10여 명은 중태였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당시로선 엄청난 사건이었다. 1899년 5월 조선에 전차가 도입된 이래 발생한 최악의 교통사고였다. 조선일보가 당일 호외를 발행하는 한편, 4월 23일자 사회면을 털어 상보를 전했을 정도다.

기사는 "효자동 종점에서 시내 적선동 서십자각 앞 '카부'를 진행하던 중 엇지된 일인지 전차가 돌연 서쪽으로 탈선 전복되는 조선 초유의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초보 운전사가 정원을 초과한 채 과속으로 몰다가 난 사고였다.

적선동 전차 전복 사고는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사고 자체도 초대형이었지만 진명여고보가 고종의 계비(繼妃)인 엄비(嚴妃)가 세운 학교로, 이른바 '명문거족'의 딸들이 많이 다닌 데다 상처가 하필 얼굴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24일자 조선일보는 "대부분 출가기에 있는 꽃 같은 여학생들이요 겸하여 상처받은 곳이 여자의 생명이라고도 할 안면이므로 더욱 애처롭다"고 보도했다.

비난의 화살은 전차 운행 회사인 경성전기로 향했다.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인 전차를 독점 운행해 오면서 잦은 고장과 사고로 원성이 자자하던 차에 제대로 '걸린' 것이다.

4월 24일자 조선일보는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 회사는 엄숙한 양심의 가책 아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질타했다. 통계를 동원해 "일년 열두 달을 두고 어느 날이나 빼는 때가 없으리만치 충돌이 무쌍하여 혹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데 작년 중 사고 412회, 사상자 219명…"이라고 비판했다. "치료비는 물론이고 꽃 같은 학생들에 대한 위자료도 내야 한다"(4월 25일자), "학부모들이 대책위원회를 결성해 경성전기에 피해보상을 요구했다"(6월 4일자)는 기사가 이어졌다.

전차 사고는 기실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년에도 잊지 않고 날마다 전차의 사고뿐"(1923년 1월 30일자), "아침에는 차축이 단절되어 40분간 연체됐고 오후에는 종로에서 탈선해 30분간 운전하지 못하였으므로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종로에 인산인해…"(1923년 10월 13일자) "생때같은 목숨을 전차바퀴에 빼앗긴 사람도 많으려니와 대개는 중경상을 입고 성한 몸이 병신이 돼…"(1924년 1월10일자) 등의 보도가 끊이질 않았다.

전차 회사의 안전불감증을 질타하고 각성을 요구하던 조선일보는 전차가 사고를 낼 때마다 이렇게 제목을 달기 시작했다. "평양전차 살인/사람을 치어죽였다"(1927년 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