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양재천 따라서 봄길 걷고 싶어…"

목련과 벚꽃, 붉은 영산홍이 화려함을 뽐내는 4월. 서울 강남·서초의 아파트와 고층건물 속에 자리 잡은 양재천이 봄기운을 맞고 있다.

봄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곳은 양재천의 공원과 숲이다.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영동 1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돌면 문화예술공원과 시민의 숲이 있다.

문화예술공원에는 메타세쿼이아 나무 길과 잔디밭이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20~30m 높이로 우뚝 솟은 메타세쿼이아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은 호젓해 외국 숲에라도 들어온 기분이다.

잔디밭은 나들이 장소로 인기다. 평일 화창한 날이면 직장인들이 샌드위치나 도시락을 가져와 나눠 먹는다. 시민의 숲에는 소나무, 느티나무, 당 단풍, 칠엽수, 잣나무 등 40여종 9만4800주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공원에서 경기 과천시 방향 길가에는 쑥, 달래, 냉이 같은 봄나물을 캐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서울대공원 이정표를 따라 7㎞쯤 가면 과천 경마장이 나온다.

저녁에는 정장에 운동화를 신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직장인이 꽤 많다. 자전거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자전거족(族)도 즐겨 찾는다.

이렇게 새벽부터 밤까지 양재천 주변은 운동하거나 자연을 호흡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하루 종일 고된 일에 시달렸던 직장인들은 저녁을 간단하게 마치고 양재천 주변을 뛰거나 걷는 것으로 노고를 잊는다.

양재천은 원래 구불구불 흐르는 사행천(蛇行川)이었다. 강을 젖줄 삼아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논밭을 일구고 장사를 했다. 일대에는 그때 모습이 반영된 지명(地名)이 남아있다. 여울이 형성되는 곳에 백로가 날아들었다는 '학여울(학탄·鶴灘)', 포구(浦口)가 있었다는 '개포동(開浦洞)'이 그것이다. 1970년대 '개포토지구획정리사업'을 거치면서 탄천과 이어졌고, 직선형 수로로 바뀌었다.

강남 개발이 시작되자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들어섰고, 생활하수가 양재천으로 쏟아졌다. 1995년 양재천은 생명이 살 수 없는 5급수 판정을 받았다. 서초구 이쌍홍 공원녹지과장은 "오염이 심할 때는 하천 근처에 파리가 끓고 냄새가 났다"며 "주변이 지저분해 우범·기피지역으로 꼽혔다"고 했다. 5급수 판정이 내려지자 서초구와 강남구가 나서 '자연형 하천복원사업'을 추진했다. 6년간의 작업을 거쳐 양재천에는 버들매치, 동사리 등 15종의 어류가 돌아왔다.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 있는 카페나 와인바가 들어섰다. 영동 1교 방향 산책로로 2㎞쯤 걷다 보면 먼지 쌓인 와인병이 줄 세워져 있는 술집이 눈에 띈다. 그곳에서부터 700m 정도, 이국적인 상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와인바와 카페, 음식점이 10여곳씩 있고, 앤티크 가구와 소품을 파는 곳도 생겼다.

와인바 시엘과 크로스비에서는 주인이 직접 만든 치즈를 먹으며 LP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하늘소는 100종이 넘는 와인을 갖추고 있다. 마오는 중국 음식점으로, 실내에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걸려 있어 이색적이다. 소더비에서는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수입한 앤티크 가구와 소품을 구경하며 유럽 귀족의 삶을 연상할 수 있다.

양재천 주변은 청담·신사동처럼 번잡하지 않아 고즈넉하다. 낮이나 이른 저녁에는 혼자 노트북을 만지거나 책을 보고, 밤에는 2~3명씩 모여 앉아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많다.

상점 건물 사이 골목길은 개발 전 옛 서울의 모습이 남아 있다. 전선(電線)이 어지럽게 엉켜 있고,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3~4층짜리 붉은 벽돌 빌라와 한쪽 벽이 담쟁이로 덮인 2층짜리 단독주택이 남아 있다. 붉은 조명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허름한 고깃집, 9.9㎡(3평) 남짓 구멍가게, 과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발소도 여전히 영업 중이다. 주민 박문진(65)씨는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회사나 상가들이 많이 들어왔다"며 "지역이 개발되면서 일부는 떠나고, 일부는 남아 이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