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흑 不計勝

〈제10보〉(134~175)=바둑은 종종 단 한 수의 실착이 대 역전패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거의 패배가 결정된 뒤에도 끝까지 버티는 것도 이 같은 바둑의 특성 때문이다. 꼭 상대의 실수를 바라서가 아니라 진한 아쉬움을 떨치지 못해 좀체 돌을 거두지 못하기도 한다. 무아지경에 빠져 관성적으로 돌을 옮겨놓는 경우도 꽤 있다. 지금 백은 셋 중 어떤 상태일까. 138로 달아나는 최후의 승부수를 노리며 백은 끈덕진 항전을 계속한다.

그 와중에 놓인 136이 실낱같던 백의 마지막 희망을 날려버렸다. 참고도 1로 바로 나가 5, 7로 역습하는 수단을 스스로 없애버린 것. 팻감도 백이 부족해 어차피 역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백에는 유일한 기회였다. 초읽기가 유죄랄까. 뒤늦게 138을 단행했지만 이미 모든 변수는 사라진 뒤였다.

145의 절단은 당연. 149까지 중앙 정비 후 151, 153도 모두 행마법 대로다. 154로 '가'에 끊으면 흑 '나'로 뻗은 뒤 양쪽 장문을 맞본다. 163부터 167까지 수를 늘린 뒤 169로 씌워 상황이 종료됐다. 여기서 수상전을 펼친다면 우하 쪽 흑과는 2수, 중앙 흑과는 3수 정도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 175에 이르자 백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긴 한숨을 내쉬며 돌을 거두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