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간직한 보물로 만성질환 치료제 만든다

해마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와 산하(山河)를 물들이는 봄꽃들. 사람들은 긴 겨울을 참아내고 터져 나오는 어여쁜 꽃망울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한편에서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보물찾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찾는 보물은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만성·난치성 질환들의 치료제. 바로 자연에서 유래한 물질로 치료제를 만드는 '천연물 신약'이다. 최근 기존 '합성 신약'의 대안으로 천연물 신약이 떠오르며 점점 보폭을 넓히고 있다. 정부 차원의 육성책도 속속 나오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해 말 천연물 신약의 임상시험 진입을 돕기 위한 제도 개선을 결정했고, 지식경제부는 미래산업선도기술로 선정하며 2020년까지 10조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제약사들의 움직임도 발 빠르다. 동아제약은 위염 치료제 '스티렌'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기능성 소화불량증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을 마쳤다. 녹십자는 지난 1월 천연물 첫 신약인 '신바로 캡슐'의 품목허가를 받으며 천연물 신약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왜 천연물 신약인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화학 물질을 합성해 치료제를 만드는 기존 방식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성공 확률은 점점 낮아지는 반면 개발 비용은 높아지고 있는 것. 또 기존 방식의 치료제는 우리 몸 안의 한 가지 목표물을 공략하기 때문에 여러 원인이 복합돼 생기는 현대의 난치성 만성 질환은 잘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 자연에 널려 있는 천연물, 특히 식물로부터 유효한 성분을 분리해 의약품으로 제조한 천연물 치료제는 우선 몸 안에서 다양한 작용을 하며 여러 원인을 동시에 공략한다. 또 아직 활용되지 않은 것들이 많아 이용할 것도 많다. 자연 유래 물질이라 장기간 사용해도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까지 기대할 수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출시된 천연물 신약은 불과 4종. 하지만 성과는 놀랍다. 20개 남짓한 국산 신약 가운데 매출 1·2위를 모두 천연물 신약이 차지하고 있다. 180억원을 들여 개발한 동아제약의 스티렌은 작년까지 누적 매출 2500억원을 기록 중이며, SK케미칼의 관절염 치료제 조인스도 1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부분의 합성 신약들이 체면치레도 못하는 사이 천연물 신약은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동아제약 손미원 박사는 "미국과 유럽, 중국과 일본 기업들도 요즘 천연물 의약품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특히 우리와 비슷한 체질을 가진 중국은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황금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했다.

◆개발 경쟁 불붙었다

녹십자는 지난 1월 방풍과 구척 등 6가지 생약 제제를 이용해 만든 골관절염 치료제 신바로 캡슐에 대한 품목허가를 받았다. 녹십자가 이 제품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효능이 기존 치료제와 비슷하면서 부작용이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삼성의료원 등 8개 병원에서 수행한 임상시험 결과 신바로는 위장 관계 부작용이 경쟁사 제품(22%)보다 낮은 13%로 나타났고, 전체 이상약물 반응은 15.9%로 경쟁 약의 절반 수준(31.3%)으로 집계됐다. 녹십자 개발본부장 이성열 상무는 "고령화가 속도가 빨라지며 노인성 질환인 골관절염 치료제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면서 "류머티즘 관절염 등의 효과도 입증해 치료 범위를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제약도 스티렌에 이은 두 번째 히트상품을 내놓을 준비에 한창이다. 동아제약은 메꽃과 나팔꽃씨인 견우자와 현호색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만든 기능성 소화불량 치료제 'DA-9701'(개발명)에 대한 임상시험을 끝내고 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 제품은 주로 동양인이 겪는 기능성 소화불량을 치료할 유일한 치료제가 될 것으로 동아제약은 기대한다. 현재 기능성 소화불량의 주요 증상인 위배출지연, 위순응장애, 위팽창과민을 모두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는 전 세계적으로 없는 상황이다. 기능성 소화불량 치료제 시장은 국내만 연간 1400억원에 달한다. 손미원 박사는 "국내 허가가 완료되면 곧바로 중국 임상도 시작할 계획"이라면서 "기존 다국적 제약사들이 선점하고 있는 합성 신약보다 경쟁이 그나마 덜한 천연물 신약은 국내 제약사들이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동아제약과 녹십자 말고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SK케미칼, LG생명과학, 대웅제약, 동화약품 등에서도 천연물 신약을 개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