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징크스를 깨라

〈총보〉(1~175)=1970~80년대 프로복싱의 황금기 때 세계타이틀전보다 더 인기 있었던 게 '신인왕전'이었다. 선수들은 아직 기량이 설익은 모습으로 물불 안 가리고 화끈하게 치고받아 투기(鬪技) 팬들의 가학(加虐) 본능을 통쾌하게 채워주었다. 어디 복싱뿐이던가. 야구의 케네디스코어, 축구의 펠레스코어란 말들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세련된 수비싸움도 나름 감칠맛이 있지만 불꽃처럼 어우러지는 공격 대결의 재미엔 미치지 못한다.

아마추어 최고수들끼리 펼치는 난타전을 보면서 그간 프로바둑에선 못 느꼈던 원초적 쾌감에 휩싸인 독자가 많을 것이다. 형세는 계속 기우뚱거렸고 반상(盤上)엔 예측 불허의 변화가 춤을 췄다. 백은 부분 전투에서 솜씨를 보였으나 큰 그림에선 번번이 자멸했다. 84만 해도 참고도처럼 처리했더라면 백에 더 희망이 보이는 형세였다.

상대적으로 흑의 관록이 돋보였다. 초에 몰린 상대를 찔러간 81, 103, 113 등은 노련하기 이를 데 없는 수들이다. 아마추어를 대표해 통합예선에 나설 이호승이 프로들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가 크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아마추어에게 본선 무대를 제공하지 않았던 LG배의 전통이 올해는 이 24세 청년에 의해 깨질 수 있을까. (109…53, 175수 끝 흑 불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