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布石論

〈제1보〉(1~22)=바둑이 시작되기 앞서 곧 펼쳐질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렘은 바둑 두는 사람들만이 안다. 종횡 19로(路)의 소우주에서 펼쳐졌던 과거의 어떤 바둑도 제각기 기구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대국자들은 항상 태초(太初)의 또 다른 새 역사를 만들어가는 조물주인 셈이다. 그들에 의해 생명의 숨결을 부여받은 흑백 돌들은 순백(純白)의 바둑판에 뛰어들어 파닥이고 용솟음치기 시작한다. 포석(布石)은 천지창조의 거룩한 역사(役事)다.

아마추어 결승전 한 판 더 본다. 최광호와 위태웅의 일전. 백의 양화점에 흑은 5까지의 '낮은 중국식'으로 대응한다. 60년대 초 일·중 교류 때 중국 천주더(陳祖德)가 첫선을 보인 후 반세기 넘게 애용되는 현대 바둑의 고전(古典)이다. 상대가 강한 쪽에서 걸쳐간 8에서 백의 맹렬한 전의(戰意)가 읽힌다.

14까지는 상형(常形)이며 15도 보통 이렇게 둔다. 18까지 선수(先手)로 좌변에 터를 잡은 흑의 선택은 19. 이 수론 참고도처럼 상변을 건설하는 것도 훌륭한 한 판이었다. 21은 힘을 비축하는 침착한 수. 포석은 미래의 꿈을 심는 묘목이고, 건축가들의 설계도이며, 대작(大作)을 준비하는 화가들의 밑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