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호 환경팀장의 현장 리포트] 백두대간 환경 훼손 심각한데 1500㎞ 새 등산로까지…

"엇, 발밑 조심하세요. 얼레지가 올라오고 있어요." 지난 29일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동쪽 끝의 매봉(해발 1173m) 정상.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로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쳤고, 녹지 않은 눈 덮인 땅을 뚫고 얼레지 잎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여느 야생화와는 달리 싹을 틔워 꽃을 피우기까지 6~7년이 걸린다는 얼레지가 매봉 정상에 나타난 것은 오랜만이었다.

오대산국립공원 신정태 과장은 "지난 몇해 동안 반질반질한 맨땅이었던 이곳에 지난해 흙을 새로 덮자 얼레지가 다시 생겨난 것"이라며 "(매봉 정상이 맨땅이 된 것은) 산 마루금(능선)을 타고 백두대간을 종주(縱走)하려는 등산객의 발길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자연환경의 마지막 보루로 꼽히는 백두대간 생태계가 기로에 섰다. 그동안 채석장·벌목 같은 각종 개발 행위가 백두대간 생태계를 위협하는 주요인으로 지목돼 왔지만, 이젠 '무분별한 종주'가 백두대간 생태계를 해치고 있다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경고한다. 게다가 산림청이 추진 중인 '1500㎞ 백두대간 트레일(trail·산길)'사업은 백두대간 마루금뿐 아니라 백두대간을 둘러싼 숲까지 동시에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백두대간 트레일은 내년부터 2020년까지 강원도 고성 진부령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 능선(688㎞)을 중심으로 동쪽에 741㎞, 서쪽에 795㎞의 산길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중심으로 양쪽에 2개의 백두대간 산행길이 새로 생겨나는 것이다. 트레일이 백두대간 마루금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위치에 조성될 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산림청 최광철 숲길정책팀장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등산하는 인구가 연간 1500만명이나 되지만 백두대간은 아직도 산악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며 "이제는 (백두대간을 즐겨 타는 산악인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백두대간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화해 내년부터 사업에 본격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림청은 "트레일이 생기면 국민들에게 백두대간의 생태적 가치를 잘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힌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백두대간 전체 능선의 약 37%인 251㎞ 구간을 관리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백두대간을 '생태계의 보고'가 아니라 등산로로 인식하는 것은 본말 전도"라며 반대하고 있다.

관리공단 관계자는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인 백두대간 중에서 생태적으로 가장 보전성이 높은 국립공원의 백두대간을 등산로처럼 꾸미겠다는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며 "국민들이 국립공원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주요 자연생태계까지 양보해선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백두대간 능선은 이미 훼손이 심각한 상태다. 관리공단이 작년 한 해 동안 국립공원 내 백두대간 능선 실태를 조사한 결과 오대산의 노인봉~매봉 구간을 비롯한 13개 구간 3만5078㎡가 토양 침식과 식생(植生) 뿌리 노출 같은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관리공단 김철도 계장은 "1980년대부터 전문 산악인들이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가 이제는 일반 등산객에게까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면서 "백두대간에 여러 등산로가 중복해서 생기면 자연 훼손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