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통 지고 도배풀 쑤는 신부님… "몸 낮출수록 하느님 크게 느껴"

서울 은평구 대조동 주택가의 3층짜리 연립주택 201호. 사회적기업 '나눔하우징'이 LH공사로부터 수주해 진행 중인 '공익 집수리' 현장이다. 시멘트 가루와 먼지를 허옇게 뒤집어쓴 일꾼들 가운데 성공회 송경용(52) 신부가 있다. 칼을 그어 낡은 벽지를 뜯어내고, 주걱으로 새 벽지를 쓱쓱 밀어내며 바르는 솜씨가 능숙하다. 이 사람이 바로 '질통계의 레전드', '최강 데모도'라 불리는 신부다(질통은 공사판에서 어깨에 메고 벽돌 등을 나르는 통을 말하고, '데모도'는 공사판 보조일꾼을 뜻하는 은어).

'나눔하우징'의 시작은 IMF 때였다. 송 신부가 이끌던 쉼터의 노숙인들이 "받고만 살 수는 없다"며 주말 봉사로 도배·장판·집수리 봉사단을 꾸렸다. 이 봉사단이 주식회사 법인으로 발전했고, 작년 4월 서울시 예비사회적기업에 선정되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30년 경력의 건축현장 기술자와 노숙인·소외계층 출신 직원이 하나가 되어 1년 만에 800여건의 공사 실적을 올렸다. 건축기사, 유학파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속속 합류했다. 이날 송 신부와 나눔하우징 식구들이 공사하고 있던 43㎡(13평·방 둘에 화장실 하나) 작은 집은 LH공사가 매입해 앞으로 자격을 갖춘 신혼부부들에게 임대될 예정.

송 신부는 요즘 임대주택 위탁사업, 노숙인쉼터, 나눔하우징을 함께 운영하는 사단법인 '나눔과 미래'를 이끌고 있다. '이사장'이라고 쓰인 명함도 찍었다. 그의 수첩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기도하고, 사람 만나고, 회의에 참석하는 일정으로 빼곡하다. 그 사이 비는 짬엔 이렇게 현장에 나와 질통 지고, 못질하고, 도배풀을 쑨다. 나눔하우징을 소외계층에 임대할 '사회적 주택'을 짓는 전문기업으로 키워가겠다는 꿈도 생겼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이웃들과 함께 일할 때 하느님의 현존을 가장 크게 느껴요. 그분들 안에 하느님이 계시죠."

그는 1979년 연세대 재학 중 서울 상계동에서 야학을 시작했다.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목사·신부들을 보며 "저것이 진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통해 가장 낮고 가난한 사람들 속에 함께 했던 예수의 삶을 배웠고, 거기에 매료돼 사제의 길을 택했다. 1985년 성공회대에 편입하고, 신학교를 다니면서 상계동과 성북동에 노숙인·청소년들의 쉼터·공동체이자 교회인 '나눔의 집'을 세웠다. 건강이 악화돼 파송 받은 영국에서 한인교회 사목을 했고 작년 한 해 동안은 성공회대 아시아시민사회대학 학장도 지냈지만, 지난달 모든 걸 훌훌 털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내 몸의 세포들이 팔팔 뛰고, 영혼이 깨어나는 것을 느껴요.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명확해지죠. 젊을 때부터 함께 이 일을 해온 친구들에게 마음의 빚도 컸고요."

그는 '작은 예수' 같았던 한 청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상계동 야학시절 만난 노창우라는 청년은 하루 15시간씩 막노동을 하면서 야학에서 라면 먹고 공부했다.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했기에 '장학금 알아봐 줄 테니 대학 가라'고 했으나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 돕겠다'며 안산으로 간 그는 앵벌이, 가출청소년 등을 돌보다 1987년 스물여섯 나이에 석연찮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송 신부는 또 어려움이 닥쳐도 "예수님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모두가 배신하고, 수제자도 끝까지 속썩이고, 고발당하고, 끝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한 예수. 그 예수의 삶을 닮으려는 소망이 송 신부를 이끌고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다. 송 신부는 인터뷰를 끝내며 이렇게 부탁했다. "일감 좀 많이 모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