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리콜, 한국에선 No콜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 3월 31일 미국에서 판매된 스포츠유틸리티비이클(SUV)인 M클래스에 대해 리콜(제작사의 결함 공개 및 무상 수리 조치)을 실시했다. 2000년부터 2004년 사이에 생산된 13만6751대가 대상이었다. 일정 속도로 주행하도록 해주는 크루즈컨트롤 기능을 해제하는 데 이상이 발견됐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M클래스를 소유한 국내 소비자들은 미국에서 단행된 리콜에 대해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 국내에 들여오는 M클래스는 전량 미국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국내에서 현재 운행되고 있는 M클래스도 모두 리콜 대상이다. 벤츠코리아측 관계자는 "현재 국내 판매된 M클래스 중 리콜 대상을 파악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해외에서 리콜됐는데도 국내에서는 버젓이 운행되고 있는 수입차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해외에서 리콜한 차량을 국내에서는 1년도 더 지난 뒤에야 리콜하는 경우도 있다. 연간 수입차 10만대 판매 시대에 접어들고 있지만, 판매만 해놓고 그 뒤에 발생하는 안전 문제는 '나 몰라라' 식의 수입차 업체들의 행태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안전에 치명적인 결함도 리콜 늦춰

수입차 업체들의 리콜 문제가 심각한 것은 국내 소비자들이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콜 사유가 안전에 치명적인 결함인 경우도 적지 않다. 볼보의 경우가 그런 예다. 볼보는 지난해 11월 9일 미국 시장에서 2010~2011년형 S80과 XC70, 2011년형 XC60에 대해 리콜을 실시했다. 에어백 결함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만약 충돌할 경우 운전석 에어백이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고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밝혔다. 볼보는 국내 시장에서는 아직 리콜을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혼다도 지난달 6일 연료통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2011년형 시빅에 대해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리콜 조치를 했다. 미 NHTSA는 "차량 전복시 밸브가 깨져 연료가 샐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자칫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모델 역시 국내 시장에서는 리콜이 실시되지 않았다.

미국의 크라이슬러는 지난달 6일 2010년형 '그랜드 캐러밴'을 리콜했다. 2009년 8월 3일부터 2010년 6월 17일까지 생산된 차량 가운데 일부가 시동 장치에 이상이 있어 주행 중 엔진이 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NHTSA는 "주행 중 엔진이 꺼지면 충돌 위험이 있다"고 적시했다.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리콜은 감감무소식이다.

문제는 해외에서 리콜한 차량과 동일한 차종이 국내에 수입됐는지 여부를 수입차 업체들이 공개하지 않는 이상 국내 소비자들이 알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성능연구소 박용성 박사는 "리콜차량 대상인지 알 수 있는 핵심 내용인 차량의 생산 시기와 생산공장에 관한 정보 공개는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 법적으로라도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리콜한 지 1년 지나 리콜하기도

수입차 업체들이 설사 리콜을 하더라도 '늑장 리콜'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 리콜을 발표했는데도 국내에서는 1년 가까이 조용히 있다가 은근슬쩍 리콜을 발표하는 업체들도 많다. GM은 2010년 3월 15일 캐딜락 CTS에 대해 제동 결함으로 리콜을 실시했는데, 국내에는 이보나 1년이나 지난 후인 올 2월 21일에서야 리콜을 단행했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안전국 김종훈 부장은 "수입차 업체들이 해외에서 리콜된 차량에 대해 쉬쉬하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위험을 방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러다 보니 수입차에 대한 소비자 불만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은 최근 자동차 판매 대수 대비 소비자 불만이 가장 높았던 회사로 아우디를 꼽았다. 아우디는 시장 점유율 0.5%에 28건의 소비자 불만이 접수됐다. 이어 포드·재규어·폴크스바겐·BMW·크라이슬러·볼보·닛산·벤츠·푸조·도요타·혼다·GM·포르셰·미쓰비시 순으로 불만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