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대 자연대 행정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자연대의 낡은 실험실을 고치는 데 보태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작고 낮은 노인의 목소리였다. 그는 "이메일이나 팩스는 사용할 줄 모른다"고 했다. 직원 이현승씨는 발전기금 약정서를 대신 써주기로 했다. "선생님, 약정액은 얼마로 생각하고 계신가요?"라고 묻자, 노인은 "어느 정도 내면 좀 도움이 될까요"라고 되물었다. 이씨는 "1만원이라도 큰 힘이 됩니다"라고 했다.
작년 서울대 자연대에 모인 기부액은 27억원. 공대(103억원)의 4분의 1, 경영대(82억원)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큰 기업 CEO가 된 졸업생이 많지 않고, 당장 써먹을 기술과는 거리 있는 순수학문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은 "그럼 2000만원으로 할게요. 계좌번호 좀 알려주세요"라고 했다.
노인은 지난 2월 서울대 발전기금 사무실을 예고 없이 방문해 "서울대 교수나 학생에서 노벨화학상을 받는 사람이 나오면 포상금으로 써달라"며 1억원짜리 수표를 건넸던 80대 A씨였다. 서울대 상대 49학번인 그는 당시 "어릴 때 화학에 관심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인) 중학생 때 근로봉사에 동원되는 바람에 수학 공부를 제대로 못해 문과로 진학했다. 화학은 내게 동경의 대상"이라고 했었다.
그는 "얼마 전 자연대 학장 명의로 온 감사편지를 받고 추가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명환 학장이 보낸 편지는 "자연대의 염원인 노벨상과 필즈상(수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연구 경쟁력 확보를 위해 낡은 실험실을 보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포상금으로 1억원을 맡겼지만 편지를 읽고 생각해 보니 연구환경이 좋아야 수상자가 더 빨리 배출될 것 같았다"고 했다. 몇 시간 뒤 계좌번호를 알려주려고 자연대 직원이 전화하자, 그는 "생각해 봤는데…, 3000만원 내겠다"며 기부액을 늘렸고, 바로 입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