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工大에 인문학 융합, 매력적인 과제"

니체의 권력론으로 이름 떨치던 정치철학자, 48세 계명대 최연소 총장, 55세 포항공대(포스텍) 석좌교수….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자주 변해왔다. 이번에 또 새 직함을 달았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기술융합연구소(HiT Institute) 초대 소장이다. 2일 연구소 창립포럼도 가졌다.

"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가 제 평생의 학문 주제입니다. 이제 현대사회의 최대 권력인 과학기술 문제를 인문학과의 융합적 관점에서 다루게 됐으니 일관된 길을 걷는 셈이지요." 그는 요즘도 주 1회꼴로 포항~서울을 오가며 강의·강연을 한다. 지난달 29일에도 '희랍신화의 전쟁신(神)'을 주제로 CEO들에게 조찬강연을 했다.

고전과 현대 인문학에 정통한 그에게 이공계 특화 대학인 포스텍이 손을 뻗친 것은 작년 9월이다.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 대학으로 도약하려면 인문학부 강화가 필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총장에서 인문학부장으로 '강등'되는 셈이어서 망설였지만, 일의 의미를 생각해 받아들였다. "MIT나 칼텍 같은 미국 공과대학들은 인문사회학도 아주 강합니다. 학생과 이공계 교수의 수에서 포스텍과 규모가 비슷한 칼텍의 경우 인문학 교수 수가 5배지요."

그에게 떨어진 '미션'은 인문사회학부 교육과정의 전면 개혁이다. 궁리 끝에 국내에서는 새로운 형식의 '통합인문사회교육과정'을 개발했다. 올해부터 1~2학년은 학기당 통합과정 4강좌(12학점)를 마쳐야 한다.

이 교수는 '인문학의 세계와 비판적 사고' 강좌를 직접 맡기까지 했다. 문학·역사·철학 교수 3명이 함께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추천서들을 읽고 기말까지 조별 발표나 논문을 내야 한다. 단순한 교양이나 지식 쌓기가 아닌 창의적 사고력 배양이 초점이다.

"흔히 '우리는 기술은 좋은데 콘텐츠가 없다'고 탄식합니다. 그러면서 이공계 학교의 각박한 현실은 방치하지요. 뒤늦게 과학자와 철학자를 모아 놓는다고 융합이 되는 게 아닙니다. 학생 시절부터 교육과정 속에서 과학도에게 왜 예술·인문학이 필요한지, 인문학도는 왜 과학기술을 아울러야 하는지 깨닫게 해야 합니다." 그는 최근 카이스트 학생 연쇄자살의 이유 가운데 하나도 교과과정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로 출범한 인문기술융합연구소도 학계의 주목거리다. '인간 가치 중심의 기술'과 '기술인문학'을 겨냥한다. 인문학자들에게는 최신 과학과의 융합·소통의 토대를, 이공계 학자들에게는 인문학의 세계와 접속하는 장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제 정년이 이제 10년 남았습니다. 마지막 과업이라 생각하고 매진해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