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LG배 세계기왕전] 流浪民

〈제3보〉(37~58)=화려한 외양과 달리 내실은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범한 겉모습과 달리 속이 알찬 사람도 있다. 바둑도 비슷하다. 한껏 기분을 낸 것 같은데 정작 실속은 묵묵히 따라간 쪽이 챙기더란 뜻이다. 지금 이 바둑의 흐름이 그렇다. 백△ 로 끼워 37 이하 40까지 조여 붙인 뒤, 42로 또 한 방 선수(先手)를 날리는 맛이 통쾌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47까지를 놓고 냉정하게 평가해 보자. 흑은 중앙만 수습하면 되는 데 비해 백은 위아래 양곤마(兩困馬)가 떠 있다. 둘 모두 근거 없이 떠도는 유랑민 신세여서, 앞으로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수순 중 45는 침착한 수. 자칫 참고1도 1에 두었다간 2, 4의 호수 순으로 삽시간에 망한다.

백48은 번지(番地)수가 틀렸다. 이른바 전장(戰場) 이탈. 참고2도 3까지 아래쪽 대마를 수습하는 것이 시급했다. 눈앞의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행군이 계속되고 있다. 49는 이 형태에서 좋은 타개책. 결국 58까지 이렇게 처리될 곳이다. 자, 여기서 연습문제 하나가 등장한다. 흑의 다음 수는 '가'와 '나' 둘 중 어느 쪽이 정답일까. 일단 축(逐)은 아닌데….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