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는 거품… 원자재는 "아뿔싸"

지난 2일 싱가포르 거래소에서 은(銀) 가격이 개장 11분 만에 12% 급락했다. 선물 가격도 13% 떨어졌다. 올 들어 50%까지 상승하며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던 은 가격은 뉴욕 거래에서도 약세를 보여 5.2% 내린 채 마감했다.

최근 강세가 꺾인 원자재는 은뿐만 아니다. 면화, 원당(설탕), 구리, 납 등 원자재도 최근 두드러진 내림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거품'을 걱정하던 원자재 시장이 드디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일까.

◆잇따르는 원자재 가격 하락

면화 가격은 지난 6월부터 올 초까지 3배(168%) 이상 뛰었다. 하지만 3월에 역대 최고가(2.12달러)를 찍은 뒤로 두 달 동안 17% 빠졌다. 면화 가격이 급등하면서 농가가 면 재배를 늘리기 시작하자 뒤늦게 가격이 내려가는 것이다. 국제면자문위원회(ICC)는 내년 회계연도에 세계 면 생산이 9%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면 수요는 2.6% 증가하는 데 그쳐, 면 생산이 소비를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원당은 다른 원자재에 비해 조금 더 일찍 강세가 꺾였다. 2월 초에 고점을 찍더니 이후 26% 떨어졌다.

구리 가격은 중국 긴축 정책의 영향을 받았다. 작년 6월부터 올 2월까지 48% 이상 올랐던 구리는 2월 중순 파운드당 4.63달러까지 올랐다. 그러나 5월 초 현재 9% 넘게 빠져 4.18달러에서 거래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의 3월 정제 구리 수입은 전년 동월보다 절반 가까이(43%) 감소했다. 구리 거래 회사인 리졸브드의 데이비드 트레켈드는 "구리의 생산량이 늘어나는데 중국 수입량은 줄어들고 있어서 가격이 하향 압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납 가격도 3월 말 고가를 찍더니 강세가 꺾였다. 납은 지난 4월 한 달 만에 7% 이상 빠졌다.

은 값의 하락은 잇단 선물 증거금 인상이 계기가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가 지난달 29일 은 선물의 개시 증거금과 유지 증거금을 모두 13% 인상하고 나서 2일에도 추가로 12% 높이기로 한 것이 은 투자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증거금은 투자자가 선물 계약 시 예치해야 하는 보증금의 한 종류로, 증거금이 인상됐다는 것은 선물 계약을 보유할 경우 쌓아둬야 하는 현금의 부담이 늘었다는 뜻이다.

투기꾼의 매수(롱) 포지션 축소도 은 값을 끌어내리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자료를 보면, 지난달 26일까지 한 주간 헤지펀드와 '큰손' 투기꾼의 은 선물 매수 포지션 계약 건수는 전주보다 26% 감소했다. 이는 이전보다 은 값 상승을 예상하는 투기 세력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상승세를 보이는 원자재는 원유와 금 정도다. 유가(서부텍사스산원유)는 지난 4월 한 달 동안 7% 가까이 올랐고 금 값은 십여 차례에 걸쳐 역대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의견 갈리는 전문가들

향후 원자재 시장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 4월부터 원자재 시장에서 발을 빼고 차익을 거둘 때라고 조언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2월 원유·구리·면화·백금·콩으로 구성된 상품에 대한 투자를 권했다가 지난달에 입장을 바꿨다. "원자재 가격이 앞으로 3~6개월간 하락할 것"이라며 원자재 시장에 투기 세력의 개입에 의한 거품이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모간스탠리는 금·원유에 대해서는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모간스탠리는 "원자재 재고가 여전히 빠듯하기 때문에 투자를 중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전망했다. 다만 원당과 면화, 커피에 대해서는 가격 하락을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