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 암투병 3년 만에 입 열다] "이제서야… 나 자신 위한 소설 쓰고 싶더라"

작가 최인호(66)가 투병 중에 장편소설을 하나 끝냈다는 문단의 풍문을 들은 것은 2월 초였다. 그것도 200자 원고지 1200장 분량을 단지 두 달 만에 완성했다는 것. 10년 전 인터뷰에서 작가는 자신의 젊을 적 속필(速筆) 에피소드를 장난꾸러기처럼 자랑스레 말한 적이 있다. 1970년 발표했던 단편 '술꾼'은 방바닥에 배 깔고 쓰기 시작해 2시간 만에 완성했고, 초기 대표작 격인 '타인의 방'(1971)은 문학과지성사로부터 청탁받은 날 밤에 시작해 동트기 전에 끝낸 소설이었다고. 그 기억이 겹쳐 떠올랐다.

―소설은 언제.

"(육필 원고 더미를 보여주며) 여기 봐. 2010년 10월 27일에 시작했어. 그래서 작년 12월 26일, 딱 두 달 만에 끝낸 거야. 하루에 20매씩, 30매씩. 매일같이 썼어."

―계기는.

"솔직히, 쓰고 싶었어. 뭔가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라, 작가로서, 내가 생명이 있음을 스스로 노래하고 싶더라고. 하지만 글이라는 게 굉장한 체력이 요구되는 거야. 과연 내가 쓸 수 있을까 그랬는데, 쓰겠더라고. '병 났으니까' 그래갖고는 무너지겠더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야. 글쓰는 것밖에 없잖아."

―어떤 소설.

"혼란되고 왜곡된 현실에서 익명의 존재가 진짜인 '나'를 찾아가는, 일종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같은 소설이야. 현대소설이지. 내 글의 본령은 현대소설이야."

―'타인의 방' 시절의?

"그래, 그 시절. 그런데 살다 보니까 역사소설, 종교소설, 대하소설 이렇게 써왔지. 그런데 이번 장편은 딱 두 달 만에 썼어. 그것도 항암치료 받으면서. 그런데 이런 말 하면,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이래서 인터뷰라는 게 좋은 건 아니야. 왜 (사뮈엘) 베케트니 이런 작가들이 인터뷰를 안 하는지 알겠어. 인터뷰라는 건 자기 미화야. 100% 자기 미화. 난 옛날부터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동시에 싫었어. 나온 기사를 보면, 진짜 내 얘기가 아니야. 남에게 보여지는 내 얘기였어."

―진짜 자신을 누가 알겠나.

"그래 나도 몰라. 내가 누구인지. 일종의 '문패'지, 문패.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본의 아니게 무장해제당했어. 평생동안 이렇게 무장해제되어 본 적이 없어. 완전히 백기투항이야. 그런데 와, 몸은 아픈데, 심안(心眼)은 밝아지더라고. 그러니까 소설이 쓰고 싶더라고. 아, 어쩔 수 없이 남에게 보여지는 것이 문학이지만, 진짜 문학은 남에게 읽히기 위한 글이 아닐 때야. 어째서 카프카가 죽을 때 자기 작품 태우라고 그랬는지 알 것 같더라고. 정말 고통스러웠어. 그런데 동시에 하루하루가 축제였어. 이 소설의 독자는, 감히 얘기하는데, 나 하나였어. 나 자신을 위한 소설을 썼어. 그런데 나 혼자만의 독자인 나에게, 이 소설이 맘에 들어. 그래서 기분이 좋아. '아픈 도중에 쓴 소설이기 때문에 뭔가를 봐 주십시오', 그러면 안 되지, 절대 안 되지. 그런데 나한테는 마음에 드는 소설이야. 그것뿐이야."

―잔인한 질문 하나. 그러면 왜 발병 초기에는 글을 안 썼나.

"쓸 수가 없어 이 사람아. 허허허허. 내가 처음에 항암치료 받을 때, 첫 치료 받고 나서 그랬어. 때려죽여도 안 받겠다고. 고통스러워. 그런데 또 그래. 견디지 못할 고통은 없어. 그런데 하여튼, 모르겠어. 이제는 글을 많이 쓰고 싶어."

―(벽에 걸린 사진을 유심히 쳐다보길래) 저기 저 사진은?

"'타인의 방' 쓰던 무렵의 사진이야."

―묘하게 웃는다.

"데뷔 후 처음으로 웃고 찍은 사진이야. 내가 행복했던 게 이번 소설 쓰면서 40년, 5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어. 무슨 이야기냐면, 어떤 비유가 좋을까. 아주 신비해. 이번 글 쓰면서 이 사진을 많이 봤어. 장난기, 냉소, 자신만만함, 약간 빈정댐. 아주 묘해. 다 들어 있어. 맞다, 새는 고무호스를 다 잘라버린 거 같아. 1973년에 스물일곱 살의 나를 중간 다 잘라내고 고무호스로 연결시킨 것 같은. 난 지금까지 평생 동안 1200매를 두 달 만에 써 본 적이 없어. 처음이야. 전작(全作)으로 쓴 첫 장편이야."

―그동안의 장편은 다 연재를 묶어낸?

"그래 다 연재만 했지, 내가 생각해도 희한해. 쓰면서 얼마나 내가 혼자 좋아했냐면(작가는 컴퓨터를 쓰지 않는다. 모두 육필 원고다), 가족이 옆에 올 때도 '오지 마' '오지 마' 그랬어. 원고 누가 훔쳐갈까 봐. 불탈까 봐. 농담 아니야. 자식들한테 유산으로 나눠줄 거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원고 1부는 도단이(아들), 2부는 다혜(딸). 글 쓰는 게 좋아. 참 좋아."

―가제는 정했나.

"아직 안 정했어. 당신도 좋아할 거야. 공개는 5월 하순에 하려고(도서출판 여백 출간 예정). 모두에게 똑같이 보여줄게. 내용 공개 못해서 미안해. 그래서 내가 원고를 들고 온 거야. 집에 있던 걸 집필실로 일부러 가져온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