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실개천 흐르는 야생화 꽃길… 남산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서울 남산(南山)에 봄이 깔렸다. 벚꽃은 서서히 지고 있지만 '갈 봄 여름 없이(김소월)' 피는 꽃이 철 맞은 수림(樹林)과 조화를 이루며 여전히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남산은 서울의 심장이자 허파. 남산의 매력은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아 언제든 쉽게 오를 수 있는 안식처라는 데 있다. "언제든지 홍진(紅塵)에 헤매는 경성 시민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는"(호암 문일평) 산이다.

남산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남대문, 퇴계로3가, 장충공원, 이태원동, 후암동 등 15곳에서 출발할 수 있다. 지하철역으로는 명동역, 회현역, 충무로역, 동대입구역, 버티고개역, 한강진역이 가깝다. 서울시가 '남산르네상스' 프로젝트를 통해 곳곳에 만든 성곽길, 전망대, 산책로, 정원, 실개천 등도 남산을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가꾸고 있다.

남산에서 시민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순환 산책로다. 서울시가 2005년 차량 통행을 전면 차단하고 2008년 탄성 포장을 마쳐, 7.2㎞에 이르는 이 남북순환로는 걷기도 편하다. 매연과 경적 소리 없이 지저귀는 산새와 개나리, 철쭉이 어우러진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지난해 공사를 끝낸 2.6㎞ 실개천은 색다른 정취를 자아내며, 산철쭉, 영춘화, 수선화, 꽃무릇 등이 화사한 4.7㎞ 야생화 꽃길도 근사하다. 순환 산책로를 다 돌면 2시간쯤 걸린다. 3호 터널 앞에 있는 경사형 엘리베이터 '남산오르미'를 타고 진입하는 것도 괜찮다. 2009년 6월 준공한 이 엘리베이터는 매년 60만명 이상이 타는 새로운 명물이다.

전에는 찻길 위주였던 소파길(명동 세종호텔~숭의여대~남산케이블카~백범광장~힐튼호텔까지 1.3㎞)은 2008년 12월 차로를 줄이고 보도를 넓혀 걷기 좋아졌다. 도로 주변 공터에 작은 공원도 4곳 만들었고, 횡단보도가 들어서 남산 쪽으로 건너기 편하다. 길 한 편에 다시 세운 한양공원(漢陽公園) 표지석도 눈에 띈다. 과거 어린이회관·국립중앙도서관으로 쓰던 서울교육연구정보원 하얀 건물에는 지구촌 민속교육박물관이 있다. 그 옆은 이른바 '삼순이계단'으로, 드라마 배경으로 쓰이면서 유명해진 111계단이다.

지하철 한강진역에서 나와 소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지난해 12월 재정비를 끝내고 다시 선보인 남산야외식물원을 만날 수 있다. 산책로(1.5㎞)와 야생화단지(1700㎡), 연못 전망소, 실개천(250m) 등이 잘 정비됐다. 소나무 정이품송 맏아들 나무(長子木)가 있는 팔도소나무단지, 수복천약수터와 감로천약수터 산책로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남산을 느낄 수 있다.

2009년 12월 들어선 5개 전망대는 서울 전경을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팔각주차장, 팔각광장, 동국대 후문 산책로 입구, 범바위 상부, 남측순환로 중간에 각각 있다.

남산 정상에 도달하면 우뚝 선 N서울타워(236.7m 높이)와 팔각정이 나타난다. 서울 한가운데임을 알리며 측량 기준이 되는 지리적 중심점 조형물 옆에 복원한 봉수대 5개가 서 있다. 청춘 남녀들이 사랑을 잠가 오랫동안 간직하겠다는 뜻으로 걸어놓은 수많은 자물쇠 더미도 눈길을 끈다.

남산 둘레에 드문드문 퍼져 있는 서울성곽길은 2009년 12월과 올 1월 차례로 재건한 사적 10호다. 1396년 18㎞에 달하던 성곽은 일제 강점기와 개발 독재 시대를 통과하면서 많이 훼손됐지만, 서울시가 의욕을 갖고 하나 둘 되살리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백범광장 인근 공사가 끝나는 2013년 5월이면 성곽 693m가 추가로 이어진다.

남산 길 구석구석에는 다양한 사적이 숨어 있다. 제갈공명을 봉안해 모시는 와룡묘(臥龍廟), 백범 김구(金九) 동상, 안중근의사기념관과 조지훈·김소월 시비(詩碑), 한용운 기념비에 정약용·이황 동상, 청계천에 있던 돌다리 수표교(水標橋) 등에 중앙정보부장 관사를 개조한 문학의 집 서울 등을 볼 수 있다.

남산의 변신은 아직 끝이 아니다. 1호 터널에 이어 3호 터널 옹벽에도 덩굴 식물과 기린초·삼색조팝 등 다양한 꽃과 식물을 심어 생명감을 불어넣는 사업이 진행 중이고, 애국가 가사(남산 위의 저 소나무)를 살리고자 남산 소나무림 4㏊를 조성하는 작업은 상반기 중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