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24] 기차역마다 이별 행렬… 농민들 살길 찾아 間島로 떠나

"놀라지 마라 하루에 100여 명. 북으로 북으로 밀리는 백의군(白衣群)"(조선일보 1926년 12월 13일자) "경의선 어파역 플랫폼에서 70이 될락말락해 보이는 노파가 북으로 달아나는 기차를 향해 목을 놓고 우는데…"(1927년 3월 17일자)

1920년대 중반, 조선 땅 곳곳에서 집단 이주, 가족 이산의 살풍경이 여기저기서 펼쳐졌다. 10여 년 전 독립투사들이 국권회복을 꿈꾸며 몰려들던 곳, 간도 땅이 그들의 목적지였다. 고향 땅에서 먹고살 길을 잃은 농민들은 한 가족, 혹은 마을 사람 수십 명씩 떼를 지어 만주로 떠나갔다. 역마다, 부두마다 이산의 통곡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근대 문명의 정수(精髓)들이 속속 도입되며 세상을 획기적으로 바꿔놓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 식민 지배 체제 속 수많은 동포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농민들의 간도행렬 배경에는 일제가 1908년 조선을 경제적으로 수탈하려고 세운 동양척식회사(동척·東拓)가 있었다. 동척의 정책에 따라 1926년까지 이 땅에 이주한 일본인 1만여 명은 헐값에 땅을 불하받아 지주로 군림했다. 이들이 부과하는 가혹한 소작료에 신음하던 농민들은 1920년대 초 몇 해에 걸쳐 흉년까지 겹치자 먹고살 길을 찾아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삼천포는 토지가 비옥하여 안락한 생활을 하여 오던 바 15년 전 동척 이주민 12호가 들어오면서 백의동포가 경작하는 전답 오백여 두락의 소작권을 빼앗고 우리 동포는 일시에 걸인이 되어 20호가 지난 7일 쓸쓸한 간도를 바라보고 갔다더라"(1927년 3월 22일자)

간도 이주는 1927년 절정에 달했다. 1926년 1년간 9000명이던 이주 인구는 1927년 들어서는 5월까지만 1만5000명을 넘어섰다.

"가면 시원한가, 안 가면 살 수 있나. 구미에도 30여 명 성주에도 50여 명"(1927년 3월 8일자) "늙은 부모를 두고 떠나는 사람과 친척을 떠나보내는 이들의 울음소리가 북행열차 시간마다 그칠 날이 없음으로 철원역 대합실은 매일 모골이 송연한 비극을 연출한다"(1927년 3월 18일자) 등의 보도가 연일 이어졌다.

그러나 남의 땅 간도가 희망의 땅일 수는 없었다. 그곳에서 애써 개간한 땅마저 빼앗는 지주들의 횡포와 과다한 세금에 고통받고, 마적 떼까지 생존을 위협했다.

조선일보는 "살길을 더듬어 중국인의 황무지를 7년 만에 옥답으로 만들어놓고 겨우 생활을 하게 된 동포 15가구가 올봄 중국인 지주로부터 쫓겨나 죽음만 기다리고 있던 바…"(1926년 12월 22일자) "살기 좋다는 말만 듣고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도 없지 아니하나 대부분은 또다시 노령(露領)을 넘어 사방으로 유랑한다"(1927년 9월 20일자)고 대륙을 떠도는 동포들의 사정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