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팔러 나온 사람들은 입구에서 번호표를 받은 뒤 그 번호가 적힌 장소에 돗자리를 펴고 가져나온 물건을 펼쳐 놓았다. 한 사람당 2.31㎡(약 0.7평) 공간이 배정됐다. 벼룩시장이 공식 개장하는 낮 12시가 되자 뚝섬 유원지 옆 공터는 돗자리 좌판을 편 500여명의 '일일상인'들로 가득 찼다.
김현애(48)씨는 집에서 쓰던 수저·밥그릇·동화책·아기 옷을 풀어놓고 있었다. 그는 "집에 팔 물건이 더 이상 없어서 오늘은 친척들에게서 쓰지 않는 물건을 얻어서 나왔다"며 "택시 운전하는 남편 월급으론 생활이 빠듯해 반찬값이라도 보태려고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물건 하나에 500원에서 3000원까지 받고 팔지만 매주 나오면 한 달에 20만원 정도는 번다고 했다.
공터 한편엔 오래된 올림푸스 카메라와 간이 족욕 기계, 전자 사전 등 잡다한 소형 가전을 잔뜩 진열해놓고 있는 부부가 있었다. 외항선원 출신인 민모(60)씨와 김오금(61)씨 부부였다. 김씨는 "남편이 외항선을 타다 더 이상 일을 못해 이곳에서 물건을 판다"고 말했다. 김씨는 "남편이 '외로울 때 들으라'며 40년 전 사다준 라디오까지 팔았는데 그게 좀 미안하다"고 했다.
민씨 부부처럼 한 시절 추억과 사연이 담긴 물건을 좌판에 내놓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주부 김윤지(51)씨는 25년 전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사준 한복 노리개를 3000원에 내놓고 있었다.
◆몰락한 중산층·장애인·노인들도 '일일상인'으로
뚝섬 벼룩시장엔 몰락한 중산층, 다른 생계수단이 마땅치 않은 노인과 장애인 가장도 많았다. 매주 토요일마다 이곳에 나와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는 한 30대 주부는"외국산 고급 식기나 값나가 보이는 오래된 전축 같은 것을 들고 나와 파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며 "'옛날엔 부유하게 사셨던 분 같은데…'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고 말했다.
휠체어에 앉아서 물건을 팔던 여상도(63)씨는 "이 나이와 이 몸에 일 구하기는 힘들다"며 "아이가 없어 조카들이 주는 곰 인형·동화책 같은 물건을 팔아서 돈벌이를 한다"고 말했다. 밥솥·대야·아이들 식판·숟가락 등을 팔던 유말련(71) 씨는 "어디서 장사할 요량은 안 되고, 며느리 눈칫밥 먹느니 여기 와서 물건을 팔아 돈 버는 게 낫다"며 "작년부터 매주 나왔더니 이젠 옆집에서 물건 팔라고 쓰던 물건을 쥐여준다"고 말했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한 노인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면서도 "6·25 동란 이후 집에서 쓰던 은수저·요강·가락지 등을 팔았던 기억이 떠올라 좀 씁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