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뵙고 싶어요" 감사편지에 女高 찾아온 英 참전용사

부산 용호동 예문여고 1층 영어전용교실. 지난 6일 낮 여든 살의 영국인 제임스 그룬디(Grundy)씨가 들어서자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중절모를 벗으며 "예쁜 젊은 숙녀들을 이렇게 만나게 돼 기쁘다"고 했다. 손에는 학생들이 선물했던 한지(韓紙) 넥타이와 감사 편지를 들고 있었다.

이들의 만남은 지난해 조선일보가 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해 연재한 기획시리즈 '나와 6·25'에 그룬디씨가 참전 경험담을 기고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1951년 2월부터 2년 4개월간 영국군 '시신 전담팀' 소속으로 전국의 격전지를 찾아다니며 전우들의 유해를 수습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그 경험담을 보고 예문여고 'UN 평화사랑회' 학생들이 "가능하다면 꼭 한번 뵙고 싶다"고 했었다. 20여명의 'UN 평화사랑회' 회원들은 미국·호주 등의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의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이날 강연에 나선 그룬디씨는 "메모지를 꺼내 적어 달라"고 했다. 80여명 학생이 다소 어리둥절해하며 종이를 꺼내자 그는 또박또박 "For your tomorrow, we gave our today(당신들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오늘을 바쳤다)"라고 했다. 그러더니 "학교 가기 싫거나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꺼내 보면 의욕이 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수많은 세계의 젊은이들이 기꺼이 참전했고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다"며 "전쟁은 정말 참혹했고 난 아기를 안은 채 얼어 죽은 젊은 엄마의 모습을 아직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마거릿 대처 총리를 예로 들며 "당장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면 여러분도 모두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UN 평화사랑회' 고유진 회장은 "척추암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직접 한국까지 와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정말 고맙다"고 했다. 지난 1일 자비로 2주 예정으로 방한한 그룬디씨는 경주 등을 둘러보고 돌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