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축구 뒤흔드는 맨유 퍼거슨 감독…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지만 "팀이 우선"… 팀워크 해친 베컴도 옷 벗겼다

25년. 알렉스 퍼거슨(70·스코틀랜드) 감독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의 지휘봉을 잡은 세월이다. 그 기간에 스페인의 명문 클럽 레알 마드리드에선 정확히 25번 사령탑의 얼굴이 바뀌었다. 40대 중반에 팀을 맡았던 퍼거슨이 70대의 노(老)감독이 되는 동안 맨유는 35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많은 우승컵을 따내고 아직도 배가 고플까. 9일 첼시전에서 2대1로 승리하며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정상을 예약한 퍼거슨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는 홈 관중 앞에 서서 두 팔을 올렸다 내리며 절하는 세러모니를 펼쳤다. 2위 첼시에 승점 6점 차로 앞서 있는 맨유는 승점 1점만 보태면 자력 우승을 하게 된다. 남은 두 경기가 블랙번과 블랙풀 등 비교적 쉬운 상대다. 맨유(+39)가 2패, 첼시(+37)가 2승을 하면 골 득실로 첼시가 우승을 차지한다.

퍼거슨은 "라이벌 리버풀을 넘어섰다"고 기뻐했다. 맨유가 정상에 서면 리버풀(18회)을 제치고 정규리그 통산 최다인 19번째 우승을 하게 된다.

◆투지가 빛났던 스트라이커

영국 축구의 새 역사를 쓰는 퍼거슨은 선수 시절 몸을 날리는 투지가 돋보이는 공격수였다. 그의 유별난 투쟁심은 성장 환경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1941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퍼거슨은 전업 축구선수가 되기 전 타자기 생산 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일했다. 당시 대규모 파업을 주도해 큰 폭의 임금 인상을 이끌어냈다. 지금도 그는 열렬한 노동당 지지자다.

퍼거슨은 1978년부터 8시즌간 에버딘을 맡아 세 번 스코틀랜드 리그 정상에 오르며 셀틱과 레인저스의 양강구도를 깼다. 1986년 맨유 사령탑으로 부임한 퍼거슨은 1992~93시즌 첫 정상에 오르며 전설의 발걸음을 시작했다. 1999년 정규리그·FA컵·챔피언스리그 동시 석권으로 기사(騎士) 작위를 받았다.

◆팀보다 중요한 선수는 없다

퍼거슨은 '두 얼굴의 승부사'로 불린다. 훈련시간에 선수들과 장난치는 모습은 동네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지만 승부의 세계에선 누구보다 냉혹하다. 선수들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라커룸에서 불호령을 내린다. 그 강도가 선수들의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라 해서 붙은 별명이 '헤어드라이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팀워크를 해치면 쓰지 않고 한번 믿으면 쉽게 버리지 않는다. 데이비드 베컴, 야프 스탐, 로이 킨 등 퍼거슨에 반기를 들거나 동료를 비난한 선수는 어김없이 맨유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반면 '괴짜 선수' 에릭 칸토나가 관중을 향해 이단옆차기를 한 뒤 방출 압력에 시달렸을 땐 그를 감싸고돌아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게 했다. 퍼거슨은 호날두가 2006 독일월드컵 잉글랜드전에서 루니의 퇴장을 유도하며 '공적'이 됐을 때도 든든한 보호막이 돼줬다.

◆퍼기가 찍으면 스타가 된다

선수를 보는 안목 또한 탁월하다. 맨유는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퍼거슨이 유소년팀에서 키워낸 '퍼기의 아이들(Fergie's Fledglings)'로 전성기를 누렸다. 라이언 긱스와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베컴이 그들이다.

퍼거슨은 2000년대 중반 이후엔 호날두와 루니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며 2007년부터 리그 3연패(連覇)를 이뤘다. 올 시즌엔 800만파운드(약 140억원)라는 '헐값' 이적료로 데려온 치차리토가 퍼거슨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선수를 쓸 때는 이름값에 기대지 않는다. 퍼거슨은 최근 챔피언스리그나 아스널·첼시전 등 '빅게임'에 치차리토·루니·박지성·발렌시아로 공격 라인을 꾸려 효과를 봤다. 리그 득점 1위(21골) 베르바토프와 도움 1위(18어시스트) 나니를 벤치에 앉혀 놓는 '간 큰' 작전은 퍼거슨이기에 가능한 용병술이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1941년 12월 31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생

▲선수 경력 1957~1974 317경기 170골

▲감독 경력
―1974~1978 세인트 미렌(스코틀랜드) 2부리그 우승 1회
―1978~1986 에버딘(스코틀랜드) 정규리그 우승 3회
스코티시컵 우승 4회, UEFA 위너스컵 우승 1회
―198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정규리그 우승 11회, FA컵 우승 5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