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의 풍류를 담아서…

옛 선비들은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부르며 으뜸 악기로 꼽았다. 소리는 깊고 장중했다. 이 때문에 거문고에는 유독 선비들이 적어놓은 시나 글귀가 많이 남아 있다. 조선 초기의 문신 김일손(1464~1498)은 귀한 오동나무를 구해 거문고를 직접 만든 후 그 감동을 악기에 새겼다. "만물은 외롭지 않으니/ 마땅히 짝을 만날진저/ 아아! 이 오동은 나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서로 기다린 게 아니라면/ 누구를 위해 나왔으리오."

그가 애지중지하던 거문고 '탁영금(보물 957호)'이 전시장으로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이 개원 60주년을 맞은 국립국악원과 함께 10일부터 6월 26일까지 개최하는 특별전 '우리 악기, 우리 음악'을 위해서다. 전국 30여개 박물관과 문중이 소장해온 악기와 악보, 서책, 회화 등 200여점이 전시돼 우리 악기의 발전 과정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탁영금과 함께 이형상의 병와금(중요민속자료 제119호), 류홍원의 양양금(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314호), 윤선도의 고산유금 등 조선시대 선비들의 숨결이 담긴 거문고들이 한자리에 놓여 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속이 빈 동물 뼈에 구멍을 뚫어 다양한 소리를 냈다. 우리의 최고(最古) 악기는 함경북도 서포항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뼈피리. 울산광역시 울주반구대 암각화에도 나발을 불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선사인들이 제천의식과 축제에 사용했던 여러 형태의 청동방울, 현재까지 확인된 최초의 현악기인 광주 신창동 출토 악기도 복원품과 함께 전시했다.

신라의 토우장식 항아리(국보 195호)에는 앉아서 현악기를 타는 토우가 앙증맞게 붙어 있다. 서 있는 자세로 비파를 치는 토우, 관악기를 불고 있는 토우 등도 나란히 놓여 있어 신라인의 음악 생활을 추정할 수 있다. 신라의 3대 보물 중 하나였던 만파식적으로 추정되는 옥피리도 눈여겨볼 만하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거문고 악보인 금합자보(보물 283호)는 임진왜란 이전의 음악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 간송미술관 소장품으로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홍도가 그린 '무동(舞童)'과 그림 속 삼현육각(三絃六角) 악기들을 함께 전시해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