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25] "전화 교환수가 한 시간 지나도 안 나와 발광할 지경"

1920년 7월 18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급히 개선하여야 할 경성우편국 전화'라는 큼지막한 기사가 실렸다.

"멀리 떨어진 지방에 소식을 전하고, 서로 움직이지 않고 연락하는 데 중요한 기관"이 "어찌된 영문인지 교환수가 한 시간을 서 있어도 나오지 않아 발광할 지경"이라며, "삼십만 명의 입설과 혀를 대신하는" 경성우편국의 통화 곤란을 질타한 내용이었다. 전화를 하려는 사람이 수화기를 들고 전화번호를 말하면 교환원이 손으로 회선을 연결해 줘야 통화할 수 있던 시절, 급증한 통화량을 교환원들이 감당 못해 빚어진 현상이었다.

기사는 "도난이나 화재 등 생명을 다투는 위급한 전화는 물론, 시간을 다투는 업무도 교환수가 더디 나오는 바람에 유무형의 손실이 경성에서만 기만 환 이상"이라며, "기다려도 나오지 않을 땐 전화통을 깨부수고 싶다"는 고객불만을 생생히 전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전화가 설치된 것은 1896년 10월. 덕수궁에 100회선의 전화 교환기를 설치하고 궁중에 3대, 각부에 7대, 평양과 인천에 2대 등 모두 12대의 전화기를 놓았다. 초창기 교환원은 남성이었으나 곧 여성으로 대체됐다. 여성 교환원들은 오늘의 '교환양(交換孃)'에 해당하는 '교환희(交換姬)'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전화 가입자는 1906년까지만 해도 2362명에 불과했으나, 1923년 2만명, 1928년 3만명으로 급증했다.

당시 전화 이용자의 70% 이상이 일본인이었기에 교환원은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했다. 따라서 전화 교환원은 조선 여성이 채용되기 매우 어려운 '전문 직종'이었다. '경성 중앙전화국 교환수 30명 채용' 공고에 조선인 163명 일본인 100명 등 263명이 몰렸다.(1929년 4월 9일자) 그러나 조선인 합격자는 극소수였다. "청진 우편국이 조선 여자 삼명을 교환희(交換姬)로 채용했다"고 뉴스로 소개할 정도였다.(1921년 5월 17일자)

교환원은 "문명의 은혜를 만 사람에게 나누어 입히는 일군"으로 일반인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하루 14만회, 가장 번잡한 시간의 호출 수는 1만4000회에 달해, 한 사람이 시간당 평균 250~300회, 분당 4~5회 전화선을 끊었다 이었다"하는 고된 직업이었다.(1935년 9월 26일자) 게다가 '그저 욕 보재기'여서 툭 하면 가입자로부터 욕을 먹고 '음담패설에도 시달려야 했다.(1928년 12월 4일자)

전화벨이 울리면 일본말로 "남방(なんばん·몇번)?"이라고 앵무새처럼 물었기 때문에 '미스 남방'으로 불리던 교환원은 자동교환기가 도입되면서 사라져 갔다. 대신 전화 시스템에서 여성들의 업무는 번호 안내나 고객 상담 서비스 업무 등으로 진화되어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