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과제물로 국제영화제 초청받는 기록 세웠죠"

영화계의 20대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무서운 아이들)'들이 한국 영화사(史)에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던 장편영화 한 편을 들고 다음 달 팬들을 찾아온다. 7명의 감독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만든 '나의 영화 그리고 나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가 평단과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감독들이 영화 제작 당시 모두 20대의 대학 재학생이었는데도 지난해 10월 세계 유수 영화제 중 하나인 캐나다 밴쿠버 영화제 '용호(Dragon & Tiger)부문'에 공식 초청됐기 때문이다. 참신성과 완성도를 일찌감치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용호부문은 동아시아 영화 중에서 신인감독의 데뷔작이나 두 번째 영화를 초청하는 권위 있는 상이다. 한국에선 1996년 홍상수 감독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이듬해 이창동 감독이 '초록물고기'로 각각 이 상을 받았다.

영화계에서는 "이처럼 기라성 같은 기성 감독들이 거쳐간 부문에 대학 재학생들의 작품이 초청된 것은 전례(前例)가 없다"며 "초청받은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사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이처럼 '대형사고(事故)'를 쳤는데도 당시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데 대해 영화업계 사람들은 "대학생들이라 프로 감독들처럼 홍보대행사나 배급사 등을 이용해 홍보하는 방법을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나의 영화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밴쿠버의 부름을 받은 데에는 영국 출신의 저명한 영화평론가이자 이 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인 토니 레인즈의 힘이 컸다. 지난해 4월 레인즈가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사무실에 들렀다가 우연히 이 영화를 보곤 "학부생들이 장편을 만드는 경우가 드문데 영화가 매우 신선하다"며 즉석에서 초청을 결정했다고 한다.

8일 건국대에서 영화를 연출한 7명 중 김태호(26), 이휘재(25), 임영빈(27), 한기태(25), 홍유진(26)씨를 만났다. 영화는 이들이 2009년 2학기 '단편영화 디지털 워크숍' 수업에서 과제로 만들었던 것이다. 단관 극장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과 극장을 찾는 관객에 관한 7가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드라마부터 코미디, 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 유쾌한 발상과 꾸밈없는 연출 덕분에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를 짓게 된다.

'청년 감독'들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각자가 만든 단편을 하나의 영화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전체적인 톤에 맞춰 모두 조금씩 양보하고 조정해야 했던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김태호씨는 "워낙 각자 개성이 강한 데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애착이 커 선뜻 자기 것을 포기하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회의 하다가 우는 사람도 있었고, 다시는 얼굴도 안 볼 거라고 뛰쳐나간 사람도 있었다"는 설명이다.

영화제작에 들어간 비용은 1000만원 정도. "감독 한 사람당 적게는 30만~40만원, 많게는 100만원 넘게 썼다"고 한다. 홍유진씨는 "영화를 만들면서 자꾸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하게 됐고 자기 얘기를 하게 됐다"면서 "이 영화는 내 분신 같기도 하고 나 자신을 모두 까발린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고 했다.

영화의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는 탓에 설렘이 클 듯하지만 정작 감독 자신들은 "불안감이 못지않게 크다"고 했다. 바로 '장래에 대한 걱정'이다. 임영빈씨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연기 전공을 꿈꿨는데 아버지가 '연봉 100만원으로 살 자신이 있느냐'며 반대했다"며 "지금은 시나리오로 전공을 바꿨지만 불안한 건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휘재씨는 2006년 건국대 영화학부에 합격했지만 부모님의 강한 반대 때문에 1년간 학교를 못 다니다 이듬해 다시 같은 대학, 같은 학부에 입학한 경우다. "계속 이 길을 고집하니까 부모님이 나중에는 지지하시더라"고 했다.

불안정한 미래와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도 이들이 영화를 하겠다고 버티는 동력이 뭘까.

한기태씨는 "'자뻑'으로 버티는 거다, 끝내는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돈 못 벌어도 밀고 나갈 수 있을 듯 하다"며 "만약 이 기사가 나간다면 부모님도 좀 믿음을 갖고 지켜봐 주실 것 같다"고 했다. 홍유진씨는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갔다가 영화과에 다시 들어온 경우다. 그는 "'공장과 같은 곳'에서 '백수를 창출하는 곳'으로 옮긴 것"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된 친구들에겐 안정적인 수입이 있지만 부러운 적은 없어요. 영화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세계를 눈앞에 펼치는 것과도 같죠. 평생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후회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