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꿈 이룬 은희철 교수… 유치 과정도 드라마

10대 국제학술대회 중 하나로 꼽히는 세계피부과학술대회가 서울로 오기까지에는 대회장인 은희철 교수(62·서울의대 피부과·사진)의 집념과 치밀한 지략이 있었다. 그는 베를린·뉴욕·시드니·파리 등으로 이어진 역대 대회 장소를 감안, '2011년 대회'가 아시아에서 열릴 유일한 기회라고 판단하고 2002년부터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돌발 변수는 일본이었다. 이번 대회가 서울로 가면 최소 50년은 일본이 대회를 유치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뒤늦게 유치전에 나온 것이다. 은 교수는 이때 고려시대 거란과의 전쟁을 적장(敵將)과의 담판으로 막은 '서희의 외교전략'을 떠올렸다. 일본 피부과 원로 의사들에게 이번에 서울 유치에 실패하면 다음에는 우리가 일본을 밀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고, 유치를 접었다. 전쟁 없이 일본을 제친 것이다. 은 교수는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은 한국을 떨어뜨리려고 무진 애를 썼더라. 국가 간 유치 경쟁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후 강력한 경쟁자는 로마와 런던이었다. 그러다 2006년 투표를 1년 앞두고 북한 핵실험 사건이 터졌다.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된다는 뉴스가 외신을 타고 퍼졌다. 로마와 런던은 호재를 만난 듯, "한국에서 열면 대회가 취소될 수 있다"고 회원국들에 강조했다.

"수년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가는 심정이었습니다. 유치는 물 건너갔으니, 포기하자는 말들이 나왔죠."

은 교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유치팀은 유럽과 미주 시각에 맞춰 새벽부터 각국에 수천 통의 이메일을 돌렸다. 나라별로 점수를 매기고 취약 지역에 전화 공세를 펼쳤다. 브라질·페루 등 남미 국가에는 두 번이나 날아가 표를 다졌다.

2007년 9월, 투표가 열리는 아르헨티나로 떠나기에 앞서 코엑스 전관(全館)과 서울 시내 호텔 수천 개의 객실을 예약해놓고 비장한 각오로 유치팀은 비행기에 올랐다. 대회 장소 결정은 74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210여명의 손에서 결정된다. 뚜껑이 열린 결과, 한국 105표, 로마 72표, 런던 26표. 대한민국의 완승이었다.

은 교수는 1980년에 영국문화원 장학생으로 영국에서 유학하면서 세계피부과학술대회의 엄청난 규모를 접하고 꼭 이 대회를 한국에서 열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 꿈이 31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