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되려던 소년, NBA 역사가 되다

필 잭슨(66) 같은 감독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그가 12일 공식적으로 LA 레이커스 사령탑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자 미국 언론은 '잭슨 돌아보기'에 열을 올렸다. NBA 역대 감독 최다 우승(11회), 포스트시즌 최다 출전(333경기)과 최다 승리(229승) 등 잭슨이 세운 업적이 그만큼 값지기 때문이다.

◆목사 집안 출신

잭슨은 몬태나주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개신교 목사였다. 잭슨을 포함한 4남매는 어려서부터 집에서 TV도 못 보는 금욕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잭슨은 고교 졸업반 때 처음 영화를 봤고, 노스 다코타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춤을 출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에서 심리학, 종교학, 철학을 전공한 잭슨은 1967년 NBA 신인 전체 17순위로 뉴욕 닉스에 지명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언젠가는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프로 선수' 잭슨은 화려하지는 않았다. 공격보다는 수비와 팀플레이로 가치를 인정받은 수비형 포워드 겸 센터(203㎝)였다.

외모도 인상적이었다. 히피를 떠올리게 하는 장발(長髮)과 콧수염, 유난히 넓은 어깨로 팬들의 눈에 들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헤드 앤드 숄더(Head and Shoulders·머리와 어깨)'였다. 1972~1973시즌엔 정규리그부터 챔피언전까지 평균 8.2점(4.2리바운드)을 올리는 견실한 플레이로 우승 반지를 끼었다.

◆트라이앵글 오펜스

1980년 뉴저지 네츠에서 은퇴한 잭슨은 NBA의 하부 리그였던 CBA, 푸에르토리코 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1987년 시카고 불스 코치로 뽑히면서 NBA에 입성했고, 1989년 덕 콜린스 감독(현 필라델피아 감독)이 물러나면서 불스 사령탑으로 올라섰다. 텍스 윈터(89) 코치가 체계화한 '트라이앵글 오펜스(Triangle Offense)'로 1991~1993년, 1996~1998년에 걸쳐 6번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말 그대로 삼각형 형태의 공격 방식이다. 선수 세 명이 삼각형 하나 혹은 다섯 명이 삼각형 두 개를 이뤄 공을 돌리면서 공격 기회를 노린다. 불스 시절의 잭슨에겐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호레이스 그랜트, 데니스 로드맨 같은 스타가 있었다.

잭슨은 1998년 6번째 우승을 일군 다음 불스를 떠났다. 제리 크라우스 단장과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다시는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잭슨은 1년 후 LA 레이커스로 옮겨갔다. 이 과정에서 두 번째 부인과 이혼했다.

◆"모터사이클로 여행했으면"

잭슨은 레이커스에서 샤킬 오닐(현 보스턴)과 코비 브라이언트를 앞세워 2000~2002년 3연속 우승을 이뤘다. 오닐이 브라이언트와 '일인자' 자리를 놓고 갈등을 벌인 끝에 2004년 마이애미로 떠나자 잭슨도 두 번째 지도자 은퇴를 발표했다.

잭슨은 1년 후 레이커스로 돌아왔고, 레이커스는 2009년과 2010년 정상에 복귀했다. 잭슨은 마지막 은퇴를 미루고 이번 시즌 3연속 우승에 도전했지만 서부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탈락했다.

그는 12일 자신의 지도자 인생을 돌아보면서 "결국 재능(talent)이 승리한다"고 말했다. 조던이나 브라이언트 같은 역대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선수들의 덕을 봤다고 인정한 것이었다.

역대 최고의 농구 감독이라는 영예를 뒤로한 잭슨은 어떤 미래를 구상하고 있을까. 우선 한동안 쉴 예정이다. 건강이 허락하면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러 곳을 여행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레이커스 경영에 관여할 가능성도 있다. 잭슨은 구단주 제리 버스의 딸이자 부사장인 지니 버스(50)와 10년째 사귀고 있다. 지니 버스가 먼저 청혼했는데 잭슨이 "결혼은 더 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해 연인관계만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