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60代 편의점 직원· 20代 경비원… 알바시장 父子세대 경쟁 치열

"어서옵쇼. 손님, 얼마나 주유해드릴까요?"

지난 10일 오전 11시 경기도 광명의 한 주유소로 승용차가 들어서자 종업원들이 일제히 손님을 맞이했다. 모두 모자와 유니폼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니 종업원들의 연령대가 천차만별이었다. 10대로 보이는 청소년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도 있었다. 이 주유소의 '알바생(아르바이트하는 종업원을 의미)'은 총 13명. 이 중 4명이 40대 후반~60대였다.

인구 고령화 현상이 심각해지고 조기 퇴직과 청년 실업이 늘어나면서 '알바 시장'에서도 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구직 자리를 놓고 '세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0대나 20대가 차지했던 편의점·주유소·옷가게 등에 장년과 노년 알바생이 대거 진입했고 현역 은퇴자들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던 아파트 경비원 자리 등에 젊은층이 진출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되고 있다. 아르바이트 전문 구인구직 포털인 알바몬이 2007년 3월부터 지난 3월까지 4년간의 신규 이력서 등록 현황을 분석한 결과, 50대 이상 고령 구직자의 이력서수는 4년 전과 비교해 약 5.4배 증가했다. 40대 구직자의 이력서도 4배 늘어난 반면, 20대는 1.8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번듯한 직장은 아니어도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겠다는 '가장(家長) 정신'을 발휘한 것이다.

이력서에 기재된 희망 업종을 분석한 결과 10대와 20대는 매장관리·판매와 서빙·주방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중·장년층도 젊은층의 알바생과 희망하는 업종이 같다는 것. 이들이 모두 원하는 근무처가 편의점, 주유소, 옷가게 등이다.

업주들 역시 나이 많은 알바생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표적인 이유가 근무기간 때문이다. 알바몬에 따르면 중·장년층은 10대와 20대 구직자들에 비해 장기 알바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이상 장기직에 대한 선호도에서 10대는 10.3%에 그친 데 반해 40·50대는 70%가 넘는 선호도를 보였다. 중·장년층의 경우 '생계형 알바'가 많다 보니 그런 것이다.

이정희(52)씨가 운영하는 경기도 시흥의 편의점에는 58세의 알바생이 일하고 있다. 이씨는 "젊은이들은 책임감 없이 갑자기 그만두기 일쑤"라며 "나보다 나이가 많아 불편할 때도 있지만 믿음직한 구석이 있어 시급을 올려주며 계속 일하고 있다"고 했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진환승(47)씨는 "어린 알바생들은 갑자기 연락이 끊길 때가 많지만 나이든 분들은 그럴 일이 거의 없다"며 "생활정보지에 구인 광고를 내면 퇴직하거나 사업에 실패한 40~50대 남성들의 전화가 하루에 10통 넘게 걸려온다"고 했다.

젊은층이 '반격'에 나선 일자리도 있다. 노인 일자리로 인식되던 경비원이 대표적이다. 최근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20~30대 젊은 경비원을 고용하는 아파트가 크게 늘고 있다. 아파트 경비업체 관계자는 "주민들이 안전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젊은 경비원들을 선호한다"고 했다. 한때 젊은층이 주류를 이뤘던 회사 택시기사의 경우도 고령화 현상이 심각해지더니 요즘 다시 젊은 구직자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과거에는 아르바이트로 대표되는 불안정한 일자리가 특정 세대에 집중됐다"면서 "최근에는 퇴직한 베이비붐 세대까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투입돼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의 경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전 교수는 "앞으로 이러한 현상이 트렌드로 자리 잡을지 잘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