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아버지 흔적 찾다 만난 은사

"사람 곱다 인성(仁成)학교 덕지체(德知體)로 터를 세우고 완전인격 양성하니 대한민국 기초 완연해 만세 만세 우리 인성학교~."

지난 13일 오후 종로구 낙원동의 한 아파트 15층. 작은 태극기를 대문에 걸어놓은 집에서 노랫소리가 울려 나왔다. 일제 때 중국 상하이에 있던 인성학교 교가이다. 최용학(73)씨가 66년 만에 기억을 더듬어 교가의 후렴구를 부르기 시작하자 스승 구익균(103)옹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따라불렀다.

일주일 전 최씨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인성학교에서 교무주임 하셨던 분이 아직 살아계십니다."

최씨는 1945년 중국 상하이에 있던 그 학교에 다녔다. 중국 상하이 내 한국인들을 위한 초등학교였다. 너무 어릴 적에 다닌 학교라 기억마저 희미해졌지만, 교실 앞에 걸려 있던 태극기와 선생님과 함께 부르던 교가만은 생생했다. 최씨는 연락처와 주소를 수소문했고,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두고 구옹을 찾은 것이다.

"동지였던 독립운동가의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는데…. 자네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니 너무 반갑고 고맙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으로 일한 구옹은 1945~1947년 인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구옹은 벽에 걸려 있는 도산 선생의 사진을 가리키며 "안창호 선생이 인성학교가 어려울 때큰 도움을 주었지"라고 했다. 그는 "우리 인성학교는 당시 중국에서 일제에 맞서 힘겹게 싸운 독립운동가들의 자녀들이 다녔던 곳인 만큼 항상 자부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의 아버지 최태현(1891~ 1940)씨는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최씨가 세 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1945년 해방 후 이듬해인 1946년 어머니, 두 누나와 함께 한국에 돌아온 최씨는 열두 살 때 어머니마저 여의면서 고아원에 보내졌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엇나갈 뻔도 했다. 그럴 때마다 최씨를 잡아준 건 어머니가 남기신 말씀이었다. "용학아, 일본에 협력하지 않고 싸운 아버지의 용맹함과 절개를 본받아야 한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최씨는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대를 나와 평택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4년 퇴직했다. 은퇴한 최씨는 자기의 뿌리를 찾기 위해 나섰다.

"아버님에 대한 흔적을 찾으려고 시작한 일인데, 상하이 학교 은사님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지요. 은사님을 66년 만에 뵈니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노환으로 귀가 잘 안 들리는 구옹의 귀에 대고 최씨는 또박또박 말했다. "선생님, 살아계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아버지처럼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