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인문학] 꽝꽝·매발톱·호랑등긁개… 나무들아, 꽃들아 멋진 네 이름 누가 지어줬니?

충남 태안에 있는 '천리포수목원'에는 그동안 모르고 지내온 멋진 이름의 나무와 꽃들이 즐비하다. 나무를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 하여 자작나무, 역시 나무를 불 속에 넣으면 꽝꽝 소리를 낸다는 꽝꽝나무, '마음이 아름답다'는 꽃말의 한국 토종 으아리, 어감과 달리 보랏빛 꽃잎이 황홀한 깽깽이풀, 진한 향기와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장미과 가침박달, '호랑등긁개나무'라는 별칭을 가진 호랑가시나무, 율곡(栗谷) 이이의 고향 마을 전설과 얽힌 너도밤나무….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인하대 사회과학부 겸임교수는 "매가 먹이를 낚아챌 때의 발톱 모양을 한 '매발톱꽃'처럼 우리 조상들은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이름들을 붙였다"며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이는 예외 없이 모두 멋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교보문고와 국립중앙도서관,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은 14일 '시(詩), 나무 따라 행복한 인문학 따라'라는 주제로 천리포수목원과 만리포 해안을 다녀왔다. 주로 역사적 유적지를 돌아본 지난번과 달리 화원과 바닷가를 찾아선지 탐방단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1979년 미국에서 귀화한 민병갈(1921~2002)이 설립한 천리포수목원 62㏊의 부지에선 1만2000여종의 수목이 자라고 있었다. 목련만 400여종이니 그 다양함에 생명에 대한 경이감마저 든다. 2000년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인증을 받았고 비공개로 운영해오다 2009년부터 부분적으로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계절의 여왕 5월에 초대형 꽃밭에 초대받은 탐방단은 초빙 강사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웠다. 아이리스가 붓꽃의 일종이라는 것, 라일락과 유사한 우리네 수수꽃다리(꽃 모양이 수수와 같다 해서 '수수꽃 달리는 나무'의 뜻)가 6·25전쟁 중 미국으로 건너가며 '미스김라일락'이라는 학명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에 피는 수련이 수국 (水菊)과 달리 '물 수(水)' 아닌 '잠잘 수(睡)' 자를 쓴다는 것을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꽃이 피었다 닫았다를 3일 동안 반복한다 해서 붙인 이름이란다.

시인 손택수 실천문학 대표는 자신의 시를 낭송해 흥취를 돋우었다.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 치욕으로 푸르다."('나무의 수사학 1'에서)

"살아 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 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 스승"이라는 시인의 시구대로 이날 탐방단 모두에게 인고(忍苦) 끝에 만개(滿開) 하는 나무는 삶의 스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