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26] 미쓰코시 백화점 문 열자, 전통상인 대책회의… 박승직이 주도

1930년 10월, 서울 한복판에 5층짜리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지점(신세계 백화점의 전신)이 문을 연 것은 전통적 상인들에게 충격적 사건이었다. 손님을 빼앗기게 된 양복점, 안경점, 포목점 등의 주인들은 극도의 위기감 속에 공동 대응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땅에서 벌어진 대형 매장과 중소상인들의 첫 충돌이었다. 조선일보 지면엔 '백화점 대책'을 고민하는 상인들 움직임이 자주 보도됐다.

특히 1931년 6월 22일 종로 경성상공회관에서 열린 '백화점 대항책 좌담회'엔 조선 상인 대표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선일보는 6월 24일자 석간 8면 톱으로 회의 내용을 보도한 데 이어, 27일자부터 29일자까지 3회에 걸쳐 상인들 발언록을 싣는 등 대서특필했다. 이 회의는 조선인 상인들 모임인 경성상공협회가 주최했는데 기사엔 낯익은 이름이 하나 보인다. 경성상공협회의 회장이 다름 아닌 훗날 '두산그룹' 창업주가 되는 박승직(朴承稷)이다. 당시 67세의 '포목상' 박승직은 재벌에 맞서 중소상인들이 뭉치자는 이 대책회의를 주최하고 개회사를 하는 등 주도적 역할을 했다.

회의에서 상인들은 "자본력이 미약한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밀려날 수는 없지 않으냐"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주목되는 것은 "에누리 폐지 문제에 대하여 가장 많은 토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1931년 6월 24일자) 상인들은 흥정에 따라 값을 깎아주는 관습을 '조선인 상업계의 일대 폐풍(弊風)'이라고 자성했다. 정찰제를 안 하니까 대형자본의 신식 매장에 밀린다는 인식이 80년 전에도 있었던 것이다.

조선일보에 연재된 발언록에서 한 상인은 "구두-양복 가게 등이 연합해서 신문 광고나 포스터를 만들고 공동 포장지와 노끈도 마련합시다"라는 제안도 했다. 또 다른 상인은 이런 반성도 했다. "물건을 사러 사람이 왔는데도 점원끼리 이야기하는 것…, 물건은 진열 안 하고 불결한 의복 입고 주인 및 점원이 늘어서 앉아 있는 것 등 여러 가지 불미(不美)한 관습을 개선하고 객에게 친절히 하여야 할 것입니다." 고객 서비스를 바꿔야 살아남는다는 인식을 한 것이다.

당국에서는 중소상공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백화점의 상품권 발행을 규제하는 '조선상품권 취체령'을 마련해 1933년 2월 1일부터 시행하기도 했다. 평양 중소상인들은 백화점에 맞서 물건을 공동으로 구입하는 기구인 '혁신상점'을 만들어 1934년 3월 11일 평양 명월관에서 창립 총회를 열었다.(1934년 3월 13일자) 조선일보는 '백화점 대항 소매상 구조책(救助策)'이라는 시리즈를 1934년 10월 14일자부터 12월 4일자까지 17회에 걸쳐 연재했다. 그만큼 대형 백화점과 전통매장의 대립 문제는 당대 사회의 뜨거운 이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