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고 철들어야 하나요

마르크 피투시 감독의 영화 '코파카바나'는 겉보기와 실체가 좀 다르다. 일단,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휴양지 코파카바나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비키니를 입은 여자나 모래사장은 없고 벨기에 오스텐트의 청회색 하늘과 노숙자가 등장한다. 영화 포스터에는 엄마와 딸이 다정하게 나와 있지만 모녀간의 사랑을 그린 가족영화도 아니다. 코파카바나에 가지 않아도 삶을 축제처럼 즐기고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게 이 영화의 진짜 모습이다.

바부(이자벨 위페르)는 사랑에 쿨하고 음악과 춤을 즐긴다. 제대로 된 일을 가진 적도 없고 정착도 하지 않는다. 그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정 많은 여인이자, 하나뿐인 딸 앞에서는 한없이 여려지는 다정한 엄마이다. 시도때도 없이 여행을 다니는 바부는 코파카바나에 가는 게 꿈이다.

딸 에스메랄다(롤리타 샤마)는 그런 엄마가 못마땅하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자신과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모녀는 늘 티격태격하기 일쑤고, 급기야 에스메랄다는 대책 없는 엄마가 부끄럽다며 자신의 결혼식에도 초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충격을 받은 바부는 딸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해 벨기에로 떠나 별장을 파는 영업사원으로 취직한다.

뒤집어지게 웃기는 장면이나 눈물을 강요하는 감동 스토리도 없지만 영화는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한다. 감독의 균형 잡힌 연출에 힘을 실어준 건 바부라는 캐릭터다. 파란색 아이섀도와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호피무늬 옷을 즐겨 입는 바부는 좀 촌스럽다. 남의 말은 잘 들어주지도 않으면서 민폐는 많이 끼친다. 그러나 사람들은 웃음이 헤프고 정도 많은 바부를 결코 미워할 수가 없다. 한 친구는 "바부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면서도 바부에게 결국 자신의 차를 빌려준다. 관객들도 바부를 한심하게 여기다가도 어느새 그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와 함께 웃는다.

위페르의 전작 '피아니스트'나 '8명의 여인들'을 본 관객이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왜 그의 출연작 40여편 가운데 16편이나 칸 경쟁 부문에 진출했는지, 왜 그가 칸의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받았는지 거듭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에선 분명 눈가에 광기와 뒤틀린 욕망이 배여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눈에 다정함과 장난기가 가득하다.

바부의 딸로 나오는 샤마는 위페르와 영화제작자인 로날드 샤마의 세 자녀 중 첫째다. 모녀는 샤마가 5세 때 이미 클로드 샤브롤이 연출한 '여자 이야기'에 함께 출연했다. 금발머리에 고운 눈매를 가진 미인인데 위페르 특유의 날카롭거나 섬세한 기운은 엿볼 수가 없다.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 이것이 포인트
#장면

바부가 딸 결혼식에서 머리에 깃털 왕관을 쓰고 삼바 댄서들과 춤을 추는 장면.(코파카바나는 브라질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대사

“장하다, 정말 잘했어!”(“나 처음으로 무임승차했어요”라고 말하는 딸에게 바부가 한 말)

#이런 분들 보세요

좋은 학교 가라고, 취직하라고, 결혼하라고, 남들과 똑같이 살라고 ‘강요’받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