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언제부터인가 애완동물 대신 반려(伴侶)동물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주고, 동생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 누구에게는 형제나 자식 같고, 누구에게는 친구나 연인 같기도 하다.

'미안해, 고마워'는 인간과 동물 간의 교감(交感)을 그린 감동 스토리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든 임순례 감독이 총괄 지휘를 맡고 독립영화계에서 이미 탄탄한 입지를 다진 송일곤·오점균·박흥식 감독이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이란 주제로 의기투합했다. 4명의 감독이 만든 25분 내외의 드라마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었다. 임 감독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 대표를 지내는 등 평소 동물보호운동에 힘써왔다. 동물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감성(感性) 드라마로, 환경재단이 주최하는 제8회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영화는 동물 학대나 유기견 문제 같은 사회적인 이슈로 접근하는 대신 반려동물과의 정서적 교감에 초점을 맞춘다.

'소풍'으로 1999년 칸영화제 단편경쟁부문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송일곤 감독은 '고마워, 미안해' 편을 만들었다. 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아버지(남명렬)가 오랫동안 길러온 반려견을 통해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긴 사랑을 뒤늦게 확인하는 내용이다. 여배우 김지호가 14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해 한때 원망스러웠던 아버지와 화해하는 섬세한 감정 연기를 펼쳤다.

박흥식 감독의 '내 동생'에 나오는 6살 소녀 보은이(김수안)의 눈에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보리가 여동생으로 보인다. 보리와 함께 TV를 보고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다. 어른들의 눈에는 그저 강아지에 불과하지만, 보은이에게는 "컹컹!"하는 보리의 소리가 "형형!"으로 들린다. 진짜 친동생이 생기면서 '강아지 친동생'과의 생애 첫 번째 이별을 경험하는 보은이의 애절한 마음이 가슴으로 전해온다.

오점균 감독의 '쭈쭈'에서 가족도, 갈 곳도 없는 노숙자 영진(김영민)은 우연히 분양받은 개와 유일한 친구가 된다. 영진은 다른 노숙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개를 감싸며 "불쌍하지도 않느냐. 똑같이 버려진 처지에 꼭 이래야 되겠느냐"고 울부짖는다. 병에 걸린 개를 치료하기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하는 영진은 더이상 노숙자가 아니다.

임순례 감독의 '고양이 키스'에서 무뚝뚝한 아버지(전국환)와 매사 티격태격하는 딸(최보광)을 화해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길 잃은 고양이이다. 동물이라면 질색을 하는 아버지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은 부녀(父女)가 서로의 마음을 여는 과정과 오버랩된다.

영화는 인간과 동물에 얽힌 이야기를 주요 축으로 삼고 있지만 사실은 망가지고 소홀해진 사람과 사람의 관계 복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화 제목을 풀면 '끝까지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사랑을 알게 해줘서 고마워'가 된다. 여기에 한마디 더 붙여도 좋겠다. "사랑해!"라고. 2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것이 포인트]

#장면
짐승이라면 질색하던 아버지(전국환)가 딸(최보광)과 화해하는 제스처로 길에서 만난 고양이에게 두 눈을 찡긋하며 고양이들의 인사법인 ‘고양이 키스’를 날리는 모습.

#대사
“언니가 만나러 갈게. 맨날 맨날 만나러 갈게.”(보은이가 동생으로 여기고 아끼던 강아지와 헤어지기 전 이불 속에서)

이런 분들 보세요
어린 시절 키우던 개나 고양이가 아직도 생각나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