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터지는 低금리 "예금 빼서 주식하러 간다"

서울 강남에 사는 박모(65)씨는 최근 한 저축은행에 맡겼던 4억원의 만기일이 돌아오자 곧바로 인출해 증권사를 찾아갔다. 7개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에 이어 일부 저축은행 간부들의 비리가 불거지자 불안했기 때문이다. 보수적 투자자인 그는 시중금리를 웃도는 수익을 안정적으로 내고 있다는 펀드 몇개에 4억원을 나눠 넣었다.

은행에만 돈을 넣었던 이모(82)씨는 최근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금리가 계속되자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기 위해 상품을 알아보고 있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돈이 새롭게 갈 곳을 찾는 데다 저금리 기조와 부동산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돈이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이동하는 '머니 무브(money move)'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운석 GS자산운용 상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산 보호심리가 강해져 돈이 은행으로 몰렸지만, 저금리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고 노후자금 수요는 점점 커지면서 더 이상 예금만이 능사가 아닌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시중금리+알파 상품, 인기 상승

그동안 저축은행은 원금을 보장하면서 시중금리보다 높은 이자를 제공해 '저금리 불만 자금'을 흡수하는 완충 역할을 했다. 저축은행을 이탈하는 자금의 행방은 두 가지 길로 갈리고 있다. 은행이나 우량 저축은행으로 옮기는 '위험 회피형'이 여전히 많지만,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시중금리보다 높은 투자상품을 찾는 '미들 리스크(middle risk·중간 위험)형'이 늘고 있는 것이다.

자산가 고객이 많은 한 보험사 자산관리사는 "요즘 보수적이었던 고령층 투자자들도 현금을 CMA계좌에서 관리하며 투자처를 찾거나, 자문형랩 등 주식상품에 들어갈 시기를 따져보는 경우가 많다"며 "일단 금리가 너무 낮고 최대 투자처였던 부동산 시장에 희망이 안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이런 호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시중금리+알파(α)' 수익을 안정적으로 추구하는 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10% 수익을 목표로 한 모 증권사의 브라질 국채펀드는 최근 출시 3일 만에 500억원이 모였다. 김현영 하나대투증권 차장은 "헤지펀드나 ELS(주가연계증권) 등 시중금리보다 1~2% 정도 높은 절대수익추구형 상품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가 판매하는 저축보험이나 변액연금, 즉시연금 같은 장기상품도 덩달아 수요가 늘고 있다. ING생명의 김희연 팀장은 "지난 1분기 때 유독 거액을 거치식으로 넣는 가입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저금리 장기화, '머니 무브' 지속될 듯

전문가들은 저축은행발 '머니 무브'가 단기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저금리 기조가 고착화된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이미 대규모 '머니 무브'를 거쳐 가계자산 중 주식·펀드 비중이 예금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1984년 미국은 예금 비중이 주식·펀드보다 2배 이상 높았지만, 1990년대 후반 저금리가 지속되자 '뮤추얼 펀드' 붐이 일었고, 주식·펀드 비중이 예금을 역전했다. 지금은 주식·펀드가 예금보다 4배 더 많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예금(47%)을 주식·펀드(28%)보다 많이 갖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은행의 저축성예금 잔고 증가 속도는 현저히 둔화되는 반면 주식계좌 예탁금은 빠르게 늘고 있다.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입출금 통장에 대기 중인 700조원의 부동자금까지 감안하면 '쓰나미급' 머니 무브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진우 미래에셋증권 자산운용리서치팀장은 "미국과 일본은 모두 1인당 소득이 2만달러를 넘기면서 간접투자(펀드) 수요가 폭증했다"며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금융자산에 대한 인식도 단순 '축적'에서 '운용'으로 바뀌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