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더 죽어야 산다

무선 데이터카드 모뎀 제조업체로 잘 알려진 씨모텍의 비리는 전(前) 대표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세간에 드러났다. 회사 측의 조사 결과 최대주주가 256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횡령·배임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대주주 측은 씨모텍의 자회사인 바이오·IT 기업 제이콤에서도 282억원을 불법으로 빼갔고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제이콤에 대해 상장폐지 결정을 내렸다. 씨모텍도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씨모텍의 소액주주는 1만4000여명에 이른다.

코스닥 시장에서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불법 행위가 도를 넘고 있다. 올 들어 상장 폐지된 코스닥 기업들의 대부분이 대주주가 일반 투자자들을 유인해 자금을 확보하고 나서 각종 불법 행위를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자금 조달을 통해 유입된 자금을 빼돌리는가 하면 아예 직접 분식회계에 나서기도 했다.

◆화려한 금융기법은 비리의 온상?

지난달 상장 폐지된 넥서스투자는 횡령·배임 혐의로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지난해 초 A씨는 사채업자에게서 100억원을 빌려 넥서스투자를 인수했다. 이후 A씨는 247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로 증시에서 돈을 빨아들인 뒤 자신의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 A씨는 10억원에 불과한 비상장사를 240억원에 인수한 것처럼 장부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얼마 전 상장 폐지된 글로웍스는 신주인수권부 사채(BW)를 활용한 경우다. 이 회사 대표이사였던 B씨는 한 창업투자회사와 함께 2009년 몽골 금광개발사업과 관련한 허위정보를 흘려 주가를 띄웠다. 물론 본인도 수익을 올렸을 뿐 아니라, 창투사는 글로웍스 BW 50억원어치를 사들여 행사한 뒤, 허위 공시로 주가가 급등했을 때 보유 지분을 전량 매도했다. 지분 매도 차익인 136억원은 B씨와 나눠 가졌다. 물론 주가가 급등했을 때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봤다.

한국거래소는 이와 같은 기업의 자금 불법 사용을 근절하기 위해 제3자 배정 증자로 인한 신주 상장 때 자금 사용 내역을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하거나 증자로 유입된 자금이 신주 상장 전에 증자 참여자에게 재유출된 경우 6개월간 보호예수가 적용하도록 한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는 "예를 들어 요즘 기업들은 유상증자 이전에 미리 자금을 차입한 뒤 차입한 자금을 사채권자에게 담보로 제공하는 형태로 거래소의 눈을 피한다"며 "거래소가 불법·편법 금융 거래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명함 바꿔 활동… 바지사장 내세우고

코스닥 시장에서는 '코스닥으로 한번 재미를 본 사람이라면 절대 시장을 떠나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적은 비용으로도 막대한 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코스닥 시장에서는 소위 '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회사를 옮겨다니면서 계속해서 활동한다.

이롬텍은 지난 2008년 4월까지 대표이사로 재직했던 C씨를 그해 10월에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후 이롬텍은 상장폐지됐지만, C씨는 2010년 6월 금형부품을 제조하는 코스닥 기업의 상근 감사로 신규 선임됐다. 지난달 상장폐지된 맥스브로의 감사였던 D씨도 최근 다른 코스닥 기업의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 지정됐다.

바이오 관련 업체로 알려진 한 코스닥 기업의 최대주주는 금형부품을 생산하는 또 다른 코스닥 기업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양쪽 기업 모두에서 해당 최대주주의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다. 대신 바이오 업체에는 자신의 측근과 처가 식구를, 금형부품 업체에는 자신의 형제를 주요주주 혹은 이사로 등재시켰다. 이 최대주주는 "적(敵)이 많아서 이름을 숨겼다"고 해명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기업 관계자는 개별 기업이 판단해서 선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래소 차원에서 개입하기 어려우나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건전성 저해 행위자에 대해서는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마련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