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手 황석영·최인호, 닮은꼴 소설로 '一合'

은인자중하던 두 소설가가 비슷한 주제의 장편소설로 문학적 대결을 벌이게 됐다.

각각 투병과 구설·표절 논란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칩거했던 작가 최인호(66)와 황석영(68)이다. 제목은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여백미디어·5월 25일 출간)와 '낯익은 세상'(문학동네·6월 1일 출간). 두 작가 모두 철저한 은둔과 보안으로 함구하고 있지만, 책 제목은 물론 주제도 비슷한 데다 두 작가의 문학적 인연까지 겹쳤다.

아직 책 내용이 100%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두 작가의 공통적인 문제의식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진짜인가"라는 것.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평범했던 일상이 뒤틀려버린 가운데 자신의 실체를 찾아 떠나는 현대인 K의 여정을 그렸다. 소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문득 K는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K라는 사람의 배역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은 도시 외곽의 쓰레기장이 배경이다. 지금 이곳이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그 세상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작가는 "이 작품 속의 풍경은 세계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이라고 작가의 말을 통해 밝혔다.

두 살 터울인 두 작가는 한국문학사에서 '고교생 문단 데뷔'라는 희귀한 기록의 보유자다. 황석영은 1961년 경복고 1학년 때 부산의 한 일간지 신춘문예에 '부활이전'이라는 작품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투고해 당선됐고, 최인호는 1963년 서울고 2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벽구멍으로'라는 작품으로 당선작 없는 입선을 했다. 지금은 추리소설 작가로 더 이름난 김병총(72)이 195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한 전례는 있지만, 소설 부문 고교생 등단은 입선이건 당선이건 두 작가를 제외하면 유례가 없다.

정식 등단은 두 작가 모두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서였다. 최인호는 연세대 영문과 재학시절인 1967년 '견습환자'로 당선됐고, 황석영은 1970년 '탑'이었다. 이후 두 작가는 각자의 고유한 문학세계로 1970년대를 자신의 연대로 만들었다. 감각적이고 도시적인 문체의 최인호는 197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로 불렸고, 사실주의 문체의 황석영은 남성 서사문학의 중심에 섰다. 두 작가가 당대 문학을 양분했던 '문학과지성'과 '창작과비평'의 대표주자로 불린 것도 이때였다.

이번 컴백은 두 작가 모두 각별한 의미가 있다. 3년째 침샘암 투병 중인 최인호는 이번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작가인생 44년에서 최초의 연재 없는 전작(全作)소설. 최근 30년 동안 몰두했던 역사·종교 소설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등단 초기 현대소설로의 회귀를 선언한 작품이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과 중앙아시아 동행에 따른 정치참여 논란, 또 2010년 장편소설 '강남몽' 표절시비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황석영 역시 이 작품을 위해 중국 리장(麗江)과 제주도에서 은거하며 전작으로 완성했다고 했다.

두 작가와 동세대인 문학평론가 김주연(70)씨는 "문학적 경향은 다르지만, 두 작가 모두 상대방을 천재로 인정하는 사이"라면서 "오랜만에 돌아온 두 작가의 문학이 정체에 빠져 있는 한국문학의 단비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