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사랑·섬세한 사랑, 우리 영화에 다 있죠"

최근 폐막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선 전례 없는 기록이 하나 세워졌다. 인터넷 티켓 발매 개시 20초 만의 매진이었다. 영화제의 '숏!숏!숏!2011'프로젝트로 선보였던 옴니버스 영화 '애정만세'였다.

무엇보다 감독에 대한 팬들의 믿음과 기대가 작용한 결과였다는 평이 많았다. 바로 욕지거리를 쏟아낸 장편 데뷔작 '똥파리'로 2009년 로테르담 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었던 양익준(36) 감독이다. 여기에 공효진·신민아 주연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에서 여성들의 감정변화를 정교하게 담아 호평받았던 부지영(40) 감독이 가세했다. 이 두 사람이 사랑이란 주제로 각각 만든 단편을 하나로 묶었다.

영화는 사랑이 기둥이지만 달짝지근하진 않다. 부 감독이 만든 '산정호수의 맛'은 10대 후반의 딸을 둔 평범한 40대 주부 순임(서주희)의 짝사랑을 다루고 있다. 양 감독은 '미성년'에서 여고생 민정(류혜영)과 30대 중반 진철(허준석)의 우연한 만남과 사랑 얘기를 썼다. 양 감독은 현실적이면서 재치 있는 대사로 유쾌한 사랑 얘기를, 부 감독은 특기인 섬세한 심리묘사로 여성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만한 사랑 얘기를 만들어냈다는 평이다. 6월 9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들을 19일 서울 홍대 근처의 카페에서 만났다.

―처음 같이 작업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땠나.

부지영 "양 감독이 똥파리 이후 기대를 많이 받고 있으니까 '내가 업혀가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 감독은 미혼의 여자 감독을 원하지 않았을까?"

양익준 "아니다. 난 처음부터 '예쁜 누나'라고 생각했었다.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봤는데 나를 보고 많이 웃어서 좋았다."

―이전에 서로의 영화를 본 소감은.

양 "유럽 영화 같은,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부 "캐릭터들이 좋았다. 감독의 유전자를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쉬운 건, 양 감독에게 가시가 있는 멜로를 원했는데 가시가 없더라."

양 "가시 없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지난번 영화 찍으면서 가시가 다 떨어져 나갔다. 다시 돋아나야 한다."

―양 감독의 '미성년' 캐릭터들이 평범하진 않던데.

양 "다들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어른은 애 같고, 애는 어른 같아진 거다."

―낯선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부 "여배우를 잘 만나면 다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부터 연기 잘하는 연극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했다. 40대 여자배우 중에서 서주희씨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우아하고 깐깐할 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영화에 나온 인물과 너무 비슷했다."

양 "예전에는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을 배우로 캐스팅했는데 이번엔 오디션을 봤다. 여자 주인공인 류혜영씨는 처음부터 맘에 들었다. 말괄량이에 되바라진 느낌이 들었달까. 실제 성격은 너무 순해서 오히려 좀 실망했다."

―두 감독 모두 사랑 영화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부 "평생 멜로는 안 찍을 줄 알았다. 특히 알콩달콩한 로맨스는 너무 염장 지르는 것 같아서 별로다."

양 "원래 내 영화는 다 멜로다. '똥파리' 개봉했을 때 한국 언론에선 가족에 초점을 맞췄는데, 일본 언론에선 멜로라고 소개하더라."

―제목이 왜 '애정만세'인가.

부 "사랑 없이 살 수 없으니까. 사랑의 한 단계에 놓여 있지 않으면 사는 게 재미가 없다."

양 "원래 제목을 '미친 애(愛)'로 지었는데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영화에 특이한 캐릭터가 많이 나오니까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아쉽다."

―사랑영화인데 달콤하진 않다.

부 "동등한 관계로 만나 밀고 당기며 연애하는 걸 오랫동안 못해봤다. 지금 내 위치에서 상상할 수 있는 멜로, 내가 만들 수 있는 멜로를 하고 싶었다."

양 "내 영화에서 두 남녀의 관계는 사랑이라기보다는 의지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서로에게 없는 것, 모자란 것을 상대방에게서 찾아내고 의지하는 것이다. 사랑은 같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하는 거다."

―현실에서는 어떻게 연애하나.

부 "원래 짝사랑을 많이 한다. 상대방의 반응과 무관하게 혼자 하는 연출의 재미가 있지 않나. 영화에서도 순임은 불쌍한 게 아니라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것이다."

양 "나도 짝사랑 전문이다. 사랑에 많이 서투르고 사랑을 표현하는 데 문제가 있다."

―다음 영화는.

양 "'똥파리' 때 모든 에너지를 다 태워버려서 많이 힘들었다. 다음 작품 계획은 아직 없다."

부 "이번에 멜로를 해보니까 재밌다. 그래도 상투적인 멜로는 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 없는 멜로 이야기를 만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