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평생 겪은 한국 현대史 썼다"

이철승 대한민국 건국기념사업회 회장은 올해 한국 나이 90세(1922년 5월생)다. 20일 오후 전화를 걸었다. 그는 '한국현대사학회' 창립 기념 학술대회장에서 토론을 듣고 있었다. "통일이 되기까지는 아직 건국과정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철승 회장이 회고록을 내고, 2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연다.

학도병으로 끌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해방 열이틀 뒤인 1945년 8월 27일 귀국한 뒤 해방공간에서 좌익과의 투쟁 및 건국 참여, 이후 5·16과 7년여의 망명생활과 김영삼 김대중과의 경쟁, 박정희·김종필과의 인연 등 90평생 겪은 한국 현대정치사의 현장이 생생히 녹아 있다.

이 회장은 "역사의 변방에 있던 사람들이나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해 잘못된 역사가 정사(正史)인 것처럼 둔갑하고 있다"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선배나 동료들 중에 기록을 남긴 사람이 많지 않아 회고록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나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단군 이래의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서 "나와 우리 시대 동료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석공 노릇을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건국유공자 지원 법안이 몇 년째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정말 유감"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1946년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 재학시절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이끌었으며, 3~5대 국회의원을 거쳐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1970~71년 '40대 기수론'을 대표하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1976년 신민당 대표를 지냈고 1980년대 이후 현실정치를 떠났다.

그는 여전히 헬스클럽을 다니는 등 건강이 좋다고 했다. 그는 "재스민 혁명이 북한에 이르는 것은 멀지 않았다"면서 "생전에 통일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회고록 골자다.

◆군을 몰라 5·16을 불렀다

(1961년) 장면의 민주당 정부는 군을 너무 몰랐다. 이게 과오였다. 나는 장면 총리가 장도영 중장을 참모총장에 임명하려는 것을 사흘 동안 찾아가 반대했다. 장면은 기회주의자라고 했다. 5·16 한 달 전쯤 장면 총리에게 쿠데타가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현석호 국방장관이 미8군에 문의했다. 미군측은 "절대 신경 쓰지 마라"고 했다. 현 장관은 경계심을 풀어버렸다. 이게 5·16을 불렀다. 나는 일본에서 5·16 소식을 들었다.

◆김대중과 각서 주고받지 않았다

5·16 이후 10년간 '식물 정치인'으로 살았다. 1969년 8월 박순천, 박종률 등과 함께 김대중을 만났다. 1971년 대선 후보는 이철승, 75년은 김대중으로 합의했다. 그 후 1970년 1월 야당인 신민당에 입당했다. 김영삼이 '40대 기수론'을 부르짖었다.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내가 당수 출마를 위해 김대중을 지지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아직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문제의 각서는 김대중이 일방적으로 써준 것이었다. 나는 김대중을 지지한 일도, 각서를 주고받은 일도 없다. 김대중과 김영삼 두 사람을 대상으로 한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2차 투표가 벌어졌을 때 나는 테니스장에 있었다.

◆박정희는 이원집정제 개헌을 추진했다

신민당 대표 시절이던 1977년 5월 27일 여야 영수회담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나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제안했다. 나중에 김성진 문공부장관에게 들은 얘기로는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지시했으나 참모들의 조직적 반대로 무산됐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박정희는 부단히 공부하고 현상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군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