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부실사태 키운 금융당국 실책, 검사 인력이 핵심인데… 금감원 전직원의 25%(1600명 중 400명)뿐
입력 : 2011.05.23 02:58
내부서도 검사는 한직 인식, 사태 걷잡을 수 없이 불거지자 지난달에야 101명 더 늘려
고비마다 이뤄진 관련 정책은 임시변통 일관… 악순환 불러, 각종 정치적 사안에 묶여 구조조정 못한 게 큰 화근
지난 2월 국내 최대 저축은행그룹인 부산 등 7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면서 촉발된 저축은행 사태의 여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인 7조원대의 분식회계와 불법 대출이 드러나 저축은행과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가 송두리째 무너진 상태에서, 검찰 수사가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의 비리를 넘어 이들의 정·관계 로비와 금융당국의 유착 의혹까지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저축은행 수사의 초점이 관련자들의 부정·부패에 맞춰지면서, 저축은행 부실을 잉태한 정책 실패(失敗)에 대한 평가는 뒷전으로 밀리는 양상이다. 금융전문가들은 "비리 관련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처벌하는 것만으로 저축은행 사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면서 "정책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축은행 사태를 키운 정책적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저축은행 수사의 초점이 관련자들의 부정·부패에 맞춰지면서, 저축은행 부실을 잉태한 정책 실패(失敗)에 대한 평가는 뒷전으로 밀리는 양상이다. 금융전문가들은 "비리 관련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처벌하는 것만으로 저축은행 사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면서 "정책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축은행 사태를 키운 정책적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①핵심인 검사기능은 찬밥
금융감독원의 본래 역할은 금융회사가 부실해지지 않도록 현장에서 감시하는 검사 업무이다. 금융산업을 어떻게 끌어갈지와 관련된 정책적 판단은 금감원 상급 기관인 금융위원회의 몫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동안 약 1600명의 금감원 직원 중 불과 4분의 1가량인 400명만 본연의 업무인 검사 업무에 배치됐다. 그 400명 중에서도 태반이 검사 외에 감독정책 업무를 함께 맡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위가 정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초 작업을 금감원에 떠넘기기 일쑤"라며 "말은 업무 협조지만 실제로는 금감원이 금융위의 뒤치다꺼리를 해왔다"고 말했다. 금융위의 저축은행 담당 사무관은 재작년까지 1명뿐이었고, 지난해 저축은행 부실이 감지된 이후에 2명으로 늘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무관 한두 명으로 저축은행법과 시행령 개정, 건전성 감독 등 관련 업무를 모두 지원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금감원에 의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더구나 금감원 내부에선 검사 업무가 한직(閑職)으로 인식돼 역량이 뛰어난 직원이 배치되지 않았다. 금감원은 저축은행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지난달에야 검사 인력을 501명으로 늘렸다.
금감원은 지난 3월까지는 검사와 감독정책 부서를 통합 운영해 왔다. 한 부서에서 정책과 검사 업무를 함께 맡다 보니 잘못된 정책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금융회사 검사나 감독 시 지적하기 어려운 자기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②임시변통 정책으로 일관
정부는 지난 10년간 저축은행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근본적인 처방을 내놓기보다는 대증 요법으로 일관했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문제는 더욱 커졌다.
2001년 인터넷 버블 붕괴로 상호신용금고 경영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2002년 상호신용금고에 상호저축은행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허용했다. '신용금고'라는 꼬리표를 떼면서 신뢰도가 높아졌다. 정부는 이에 앞서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예금자 보호한도를 1인당 5000만원까지로 높여줬다. 서민이 아니라 '큰손'들이 5000만원씩 쪼개 돈을 맡기는 곳으로 저축은행의 성격이 바뀐 것이다.
2003년 카드 사태 이후 서민 경제가 어려워지자 정부는 서민금융 기관인 저축은행에 다시 온정적인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인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은 정부가 2006년 8월 '88클럽'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88클럽이란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 비율 8% 이상'이고 '3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이하 여신이 8% 미만'인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저축은행을 뜻한다. 정부는 우량 저축은행의 기준을 세운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88클럽에 속하는 저축은행들에 한 기업당 대출 가능한 한도(80억원)를 초과해 대출할 수 있게 규제를 풀어주면서 'PF폭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부도 저축은행이 속출하자 정부는 저축은행 간 M&A(인수·합병)를 통해 급한 불을 끄려 했다. 그러나 이는 다른 저축은행까지 함께 부실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금융감독원의 본래 역할은 금융회사가 부실해지지 않도록 현장에서 감시하는 검사 업무이다. 금융산업을 어떻게 끌어갈지와 관련된 정책적 판단은 금감원 상급 기관인 금융위원회의 몫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동안 약 1600명의 금감원 직원 중 불과 4분의 1가량인 400명만 본연의 업무인 검사 업무에 배치됐다. 그 400명 중에서도 태반이 검사 외에 감독정책 업무를 함께 맡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위가 정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초 작업을 금감원에 떠넘기기 일쑤"라며 "말은 업무 협조지만 실제로는 금감원이 금융위의 뒤치다꺼리를 해왔다"고 말했다. 금융위의 저축은행 담당 사무관은 재작년까지 1명뿐이었고, 지난해 저축은행 부실이 감지된 이후에 2명으로 늘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무관 한두 명으로 저축은행법과 시행령 개정, 건전성 감독 등 관련 업무를 모두 지원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금감원에 의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더구나 금감원 내부에선 검사 업무가 한직(閑職)으로 인식돼 역량이 뛰어난 직원이 배치되지 않았다. 금감원은 저축은행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지난달에야 검사 인력을 501명으로 늘렸다.
금감원은 지난 3월까지는 검사와 감독정책 부서를 통합 운영해 왔다. 한 부서에서 정책과 검사 업무를 함께 맡다 보니 잘못된 정책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금융회사 검사나 감독 시 지적하기 어려운 자기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②임시변통 정책으로 일관
정부는 지난 10년간 저축은행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근본적인 처방을 내놓기보다는 대증 요법으로 일관했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문제는 더욱 커졌다.
2001년 인터넷 버블 붕괴로 상호신용금고 경영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2002년 상호신용금고에 상호저축은행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허용했다. '신용금고'라는 꼬리표를 떼면서 신뢰도가 높아졌다. 정부는 이에 앞서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예금자 보호한도를 1인당 5000만원까지로 높여줬다. 서민이 아니라 '큰손'들이 5000만원씩 쪼개 돈을 맡기는 곳으로 저축은행의 성격이 바뀐 것이다.
2003년 카드 사태 이후 서민 경제가 어려워지자 정부는 서민금융 기관인 저축은행에 다시 온정적인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인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은 정부가 2006년 8월 '88클럽'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88클럽이란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 비율 8% 이상'이고 '3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이하 여신이 8% 미만'인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저축은행을 뜻한다. 정부는 우량 저축은행의 기준을 세운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88클럽에 속하는 저축은행들에 한 기업당 대출 가능한 한도(80억원)를 초과해 대출할 수 있게 규제를 풀어주면서 'PF폭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부도 저축은행이 속출하자 정부는 저축은행 간 M&A(인수·합병)를 통해 급한 불을 끄려 했다. 그러나 이는 다른 저축은행까지 함께 부실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③ 경제논리보다 앞선 정치논리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들은 저축은행 문제가 장차 엄청난 재앙이 될 것임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임기만은 넘기자는 보신주의가 강했다. 게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외압이 가해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하반기 저축은행 문제를 공론화시켜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나, 정부 상층부에서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국 금융의 치부(恥部)를 드러낼 수 없다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있어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저축은행에 대한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툭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듯했지만, 이를 공개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2008~2009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저축은행을 수술할 기회를 놓쳤다.
저축은행들이 정·관계에 광범위한 로비를 펼치면서 금융당국이 과감한 정책을 펴지 못했다는 의혹도 있다. 저축은행에 불리한 정책을 펴거나 검사를 나가 부실을 적발하려 하면 "잘 봐달라"는 정치권 청탁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들은 저축은행 문제가 장차 엄청난 재앙이 될 것임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임기만은 넘기자는 보신주의가 강했다. 게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외압이 가해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하반기 저축은행 문제를 공론화시켜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나, 정부 상층부에서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국 금융의 치부(恥部)를 드러낼 수 없다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있어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저축은행에 대한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툭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듯했지만, 이를 공개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2008~2009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저축은행을 수술할 기회를 놓쳤다.
저축은행들이 정·관계에 광범위한 로비를 펼치면서 금융당국이 과감한 정책을 펴지 못했다는 의혹도 있다. 저축은행에 불리한 정책을 펴거나 검사를 나가 부실을 적발하려 하면 "잘 봐달라"는 정치권 청탁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