低성장의 역설 "경기 지표 하락이 세계 증시에 호재"

'주가는 경제의 거울'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반대로 갈 때도 있다.

지난 19일, 미국에서 발표된 경제지표는 제조업지수·주택지수·경기선행지수 등이 모두 엉망이었다. 그러나 이날 주가는 오히려 상승했다. 소셜네트워크(SNS)업체 '링크드인'의 성공적인 상장을 호재로 꼽았지만, 나쁜 지표가 전혀 악재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증권사에선 '호재'로 해석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 경제 지표가 줄줄이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증권 시장에서는 이를 오히려 반기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경제 성장이 시원치 않으면 세계 각국 정부가 계속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돈을 풀고, 이 돈이 주식시장을 떠받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야 주가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저성장의 역설(逆說)'이 주식시장을 지배하게 된 셈이다.

◆"불확실성 사라져… 하반기 주가 더 오를 것"

미국의 민간 경제조사기관인 콘퍼런스보드는 지난 19일(현지시각) 미국의 4월 경기선행지수가 마이너스 0.3%를 기록해 작년 6월 이후 10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애초 0.1% 상승을 예상했었다.

이날 발표된 미국 필라델피아 제조업지수도 3.9로 전문가 예상(20.0)을 큰 폭으로 밑돌았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하는 이 지수는 미국의 대표적인 경기 체감 지수다. 주택 시장도 예상 외로 부진했다. 전미부동산중개협회(NAR)에 따르면 4월 기존주택 매매는 전달보다 0.8% 감소한 505만채에 그쳤다.

그러나 이에 대해 증시 전문가들은 "경기 지표 하락이 오히려 세계 증시에 호재"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김지환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결과로 미국 경제에 긴축 가능성이란 하나의 불확실성이 사라졌다"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연말까지 갑자기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거나 금리를 쉽게 올리지 못하고 금융 완화 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경제지표가 좋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더욱더 돈을 풀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한다. 미국 정부가 6월 말 이후 다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금리를 더 낮출 수 없는 상황에서 경기를 살리기 위해 돈을 푸는 것)에 돌입할 수 있다는 것. 미국은 애초 오는 6월 말까지 2차 양적완화(QE2)를 마치고 3차 양적완화(QE3)는 시행하지 않는다고 밝혔었다.

심재엽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미국에서는 올 초까지만 해도 QE3에 대한 논의는 금기였지만 최근 늘어난 추세"라며 "하반기 이후 상황에 따라 QE3가 없다고 단언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도 경제 지표 악화 때문에 금리 인상 등 '돈줄 조이기'를 미루는 추세다.

특히 일본의 경우 3·11 대지진 이후 경제 재건을 위한 유동성 확대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투자증권 유상호 사장은 "올해 각국의 긴축정책을 우려했지만 일본이 대지진으로 돈을 많이 풀 것으로 예상돼 걱정을 조금 던 상태"라고 말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 중앙은행(ECB)은 남유럽 재정위기 등에 따라 이달 초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금리 인상을 사실상 오는 7월 이후로 미뤘다.

◆"긴축 정책 쉽게 안 바뀔 것" 반론도

그러나 이에 대해 "각국 정부가 긴축 정책을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경우 하반기에 세계적으로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경제 지표들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까지 회복된 상황에서 시장에는 과도하게 많은 돈이 풀려 있다"며 "지표가 1~2개월 안 좋게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세계 각국이 긴축 정책의 큰 틀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장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주가가 오르는 '저성장의 역설'은 일시적으로는 가능하나, 언젠가 긴축이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반기 주가가 크게 오르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